다시 세우시는 성령님

사도행전 15:36-41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하나님의 손에 드린 도끼

사도행전 15:1-35 (성경봉독 15:1-5)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하니라

<설교요약>
'한 남자가 하루 온종일 열리는 나무 자르는 대회에  도전했다. 그 도전자는 점심 먹는 시간을 제외 하고는 열심히 나무를 잘랐다. 그러나 상대방 선수는 하루 동안 여러번 휴식을 취했고 여유있게 점심 식사를 했다.  저물어가는 마지막 시간에 도전자는 상대방 선수가 자신이 자른 나무보다 더 많은 나무를 자른 것을 보고 놀라고 화가났다. 그는 상대방 선수에게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내가 당신을 볼 때마다 당신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보다 더 많은 나무를 잘랐는지 모르겠다' 라고 했다. 승리한 그 상대 선수는 '당신은 한 가지 나에 대해 주목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휴식을 취할 때마다 나의 도끼날을 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바울의 손수건만 병들고 악귀 들린 사람에게 가져다 얹어도 병이 떠나고 악귀도 떠나는 일들도 일어났다.(행 19장) 그런데 이렇게 더 강력한 성령에 능력에 붙들리기 전에 15장에 마치 도끼날을 갈 수 있도록 해 준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믿어도 모세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다가 점점 식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도끼날을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아이 같은 신뢰다
성경은 예수님을 잘 믿다가 다시 율법적인 삶으로 돌아갈수 있는  증거를 보여준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처음에 은혜로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서로 경쟁하다가 예수님께 꾸중을 들었다. 그 꾸중을 들은 시점은 제자들이 그 동안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습을 지켜 보다가 서서히 그들 스스로 예수님처럼 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복음도 전하는 시기였다. (눅9장/막9장) 따라서 제자들이 사역을 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외적인 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에 그들은 내가 했다라고 하는 자신들의 율법적인 의가 다시 살아났음이 분명하다. 이 때 예수님이 그들의 율법적인 자기 의를 다시 깨뜨리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시게 하기 위해 사용하신 것은 어린아이였다.(마:18:3) 어린 아이가 한 것이 무엇이라고 그가 천국에 들어갈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마:18:4)  이 아이가 자기를 낮추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키를 낮추었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비하의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예수님이 시키는 데로 했을 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믿음에 뿌리를 두고있다. 부모를 신뢰하는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인정한 아이다. 그래서 겸손하다.

그리스도인의 나눔이다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통로 중에 하나가 나눔이다. 그 나눔은 단순히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행하신 일들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순수하게 나누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은 자신이  그분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자신을  통해 예수님 자신의 일을 하기 원하시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을 나누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하신 일을 나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하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그 분께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눌 때 '큰 기쁨'을 주신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만나고 나면 적지 않은 시간과 말들을 주고 받았는데 그다지 기쁨을 느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에는 만날 때마다 큰 기쁨이 있다. 나눔이 있는 곳에는 치유가 있고 영혼이 맑아지고 또 만남이 기대가 되고 기쁨이 배가 된다. 이런 나눔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 전에 기도로 그 만남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그 만남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날카롭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해주시며 다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열정으로 전환된다.

지혜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무뎌지게 하고 절망스럽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분노' 다. 분노할수록 마음은 슬픔에 사로잡히고, 기쁨은 상실되고, 평안은 깨지며, 두려움은 엄습한다. 분노의 반대말은 온유일 것이다. 그러나 온유하고 싶어도 누군가 마음을 뒤집어 놓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쉽게 무너지곤 할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분노를 잡는 무기를 주셨는데 바로 '지혜' 다. 베드로는 성령의 음성과 환상을 직접 듣고 고넬료에게 가고, 죽은 제자 다비다도 살렸던 사람이다. 감옥에서 천사의 음성을 듣고 초대 교회로 갔던 사람이다. 바울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선교지로 주저하지 않고 떠난 사람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런 음성은 없다. 대신 신실한 사람들과 지혜를 모았고 야고보의 구약 성경 인용 말씀을 종합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는 신중한 생각, 결정, 대화, 성경 의 적용 모두가 들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적용된 그들의 지혜가 담긴 결정을 권위 있게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때로 성령의 내적인 음성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말씀하시고 결단하게 하신다. 그러나 어떤 때는 우리가 마음의 생각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에 비추어 어떤 일을 생각하길 원하신다. 이것이 지혜다. 따라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은 명료하다. 지식은 공부를 통해 어떤 것에 대한 정보를 알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생각을 통한 깨달음으로 바른 선택을 하고 적들의 악한 계획을 파하는 영감과 통찰력을 준다.

당신은 분노를 지혜로 파하는 사람인가? 그럼 도끼날을 가는 사람이다.  성령이 주신 경험과 말씀의 올바른 적용을 위해 생각을 사용하라. 그 때 당신의 영혼은 날카롭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고,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안에 갖힌 영혼을 구해내는 그 분에 손에 들린 도기까 될 것이다. 그 분의 뜻을 정확하게 찍어내는 삶을 살 것이다. 

당신은 지혜를 사용하고 있는가? 당신은 모임을 하고 있는가? 나눔을 하고 있는가? 나눔에는 영적 기쁨이 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같은 신뢰를 위해 영혼을 집중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도끼를 찿고 계신다. 하나님이 찍고 싶은 나무를 정확하게 찍을수 있는 도끼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갈고 있는 도끼를 찿고 계신다.

하늘의 장자

창세기 25:27-34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설교요약>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다. 에서는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집에서 거하길 좋아했다. 그 런데 주목할 것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판 것이다. 에서는 망설임 없이 죽 한 그릇으로 자신의 장자권을 동생에게  팔아 넘겼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고 성경은 말씀한다.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는 장자권은 부모로부터 받는 물질적인 유산과 관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인 접근 이외에도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을 멸시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고 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를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어머님인 리브가의 도움으로 에서로 분장해서 눈이 잘 안 보이는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숭수 있게 된다. 아마도 리브가는 에서가 헷족속의 딸들인 유딧과 바스맛으로 인해 에서가 하나님을 버리고 문란하게 우상을 숭배하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였다. 결국 에서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길을 선택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장자의 축복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따라서 에서의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은혜들을 멸시함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가 그렇게 멸시하던 장자의 명분을 사모했다.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이 유치하고 야비하기까지 했지만 그가 장자의 직분을 사모한 것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모든 축복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 멸시하는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외적으로 볼 때 혐오스럽고 초라해 보이는 한 사람까지 존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의 대속은 하나님께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이루실 대속의 그림자, 즉 예고편이었다. 특별히 처음 것을 드리라고 할 때  둘째, 셋째는 그럼 대속이 필요 없는 것일가? 또한 선택 받지 못하거나 열등한 존재인 것일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대속은 누군가 자신의 죄를 위해 댓가를 지불하고 대신 죽은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 첫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난다. 그렇기에 더 이상 첫째가 아니다. 대속 받은 자들은 하늘에 그 이름이 기록되 었고 하늘의 장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 계보를 계속 이으려면 동생들은 다시 첫째가 되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야만 한다.

리스트로 벨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 감람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학적으로 물었다.
A.D 3세기의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 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인용했다. 그래서 십자가형을 받는 사람은 태형에 의해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고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빠진다고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평 들보를 지고 갈보리 언덕으로 비틀거리며 올라가셨다. 그 때 예수님은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있었기에 결국 넘어지셨고, 로마 군인들은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서 '내가 목마르다' 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이 박히기 전에 이미 위독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져 죽음이 임박했음을 아시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외치신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정지 되면 서 운명하셨다고 했다. 요한의 설명은 현대의 의사들이 예상하는 바와 일치하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요한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다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적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자신은 죄인이고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이 끔찍한 고통을 짊어지신 것을 믿는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그러나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예수님이 당신에게 하늘의 장자 명분을 준 것이 믿어 지는가? 그것은 오직 은혜였음이 믿어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늘의 그 이름이 기록된 장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와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 많이 들어 자신이 그 분에 대해서 그냥 알고 있는 것인지, 믿고 있는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삶의 증거는 '생존을 위한 권리를 주께 드리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와 같이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분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세상의 어떤 눈에 띌만한 죄악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생존을 위한 일 때문일 경우가 많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 하늘의 장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생존권까지 하나님께 드리며 산다.  그리고 그 때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

당신은 생존권까지도 주님께 맡기고 사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십자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는 사람이다.

성령에 붙들린 사람

사도행전 14:19-28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설교요약>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가장 중요하게 다룬 주제는 성령님의 성품과 특성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내 안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지 궁금해 한다. 금주 말씀에는 내면에 성령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1_내면이 요동치지 않는다
한 영혼의 내면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함께 하시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 때 두드러지는 성품의 변화는 어떤 상황 속에도 쉽게 요동치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잠 4:23) 울었다가 바로 웃고, 화냈다가 바로 온화해지고, 사랑했다가 바로 미워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다 바로 세상 정욕에 사로잡히고, 칭찬했다가 바로 비난하고, 자신을 너무 좋아했다가 바로 자신을 혐오하며, 기뻐했다가 바로 슬퍼하는 삶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삶인 것이다. 이런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삶의 결과는 '생명의 근원'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기쁨과 평안이 없으니 슬픔과 허무와 공허가 그 내면을 채운다. 그러나 마음을 지켜주는, 진리이신 예수와 성령, 그리고 말씀이 내면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요동치는 삶에서 흔들림 없는 삶으로 변화하므로 스스로에 대한 후회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증가한다. 이러한 삶의 근원적 문제는 그 내면의 마음을 지켜줄 진리가 있는가 없는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돈도, 명예도, 인기도, 사람도, 결코 우리 삶의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가치들은 우리의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 바위처럼 내면이 견고해지고 있다면 진리되신 성령이 당신의 내면에 살아 계시다는 증거다.

2_하나님이 주신 양을 삶의 우선 순위에 둔다
무조건 어려운 사역을 하려는 것이 영적이고 성스러운 일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 속에 자신의 야망과 탐욕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음도 깨달아야 한다. 반면 영혼을 향한 사랑 때문에 어려운 일과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우선 순위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선택의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무엇 때문에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았을까? 바울이 자신을 죽인다 한 의미는 세상의 정욕과 죄와 쾌락을 마음 속에 품게 될 때마다 그 마음들을 죽였다는 걸 의미한다. 자신을 죽인다고 한 고백 속에는 자신도 그런 죄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우리는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자신을 희생할 때에도 죽어지지 않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자아가 있을 수 있다. 그 때마다 그런 자아와 죄성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죽여야 한다. 그럼 어떻게 죽여야 할까?

3_ 죄성의 태도와 행동들을 죽이기 위해 예수님께 도움을 구한다
우리 스스로는 자신이 가장 많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고 또한 가장 영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나님은 이런 자아를 못박으라 하신다. 성령에 의해 인도되지 못한 자아는 혼자라는 외로움과 무거운 짐으로 인해 그 영혼이 상한다. 그리고 근심과 걱정이 너무 커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의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심을 믿을 때 우리의 근심은 찬송으로, 걱정은 기도로 바뀐다. 바울은 자신을 정욕과 교만과 차별과 무시로 이끄는 몸의 근성이 있었다. 반면 성스러운 삶을 추구하고, 겸손하며, 희생하는 모습을 추구하려는 은혜도 그 안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정적인 것이 마음에서 제어되지 않아 밖으로 표출되려 할 때, 그런 흉한 죄성의 태도와 행동들을 노예 다루듯 다루었다. 그 때 그가 노예처럼 다룬 몸의 태도와 행동이 다시 마음에 영향을 주어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아름다운 태도와 행동이 그로부터 흘러나오게 하는 경험을 하였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분의 도움을 구할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우리의 몸이 우리 자신에게 복종하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몸의 행동을 노예 삼고 있는가? 그럴 때마다 뜻하지 않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가? 삶의 우선 순위가 무조건 어려운 일, 어려운 곳으로 가는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 있는 양들을 사랑함인가? 당신의 내면에 요동치는 파도가 점점 바위처럼 견고해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성령께 붙들린 삶을 살고 있다.

거룩은 사역이다

사도행전 14:11-18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설교요약>
사단이 다양한 공격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유혹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 분을 예배하는 것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오늘날의 교회가 복음을 전해 그들로 채워지길 원하신다.
또한 그들에게 성경을 처음부터 잘 가르쳐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길 원하신다. 이런 일을 할 때 사단은 우리를 영적으로 공격한다. 이런 위협에도 담대하고 평안하게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마귀가 싫어하는 일인지를 인지하는데서부터 나온다. 

사단이 다양한 공격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유혹하는 두번째 이유는 관계는 끊지 못해도 교제라도 끊어 놓길 원하기 때문이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그 분과의 교제는 점점 시들해지고 세상의 영광과 쾌락에 취하다 보면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이 어려워 진다. 그렇게 되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고, 영혼 구원에 무관심해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안에서 분별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분별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유지할 때 그 분과 계속 교제하고 그 분의 거룩한 성품과 은혜들을 제대로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단의 유혹들을 무기력 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 위해서 추구해야 할것은 무엇일까?
첫째. 거룩은 사역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예배할 분은 오직 유일신이신 하나님이다라고 성경은 적고 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거룩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을 구별하는 것에서 거룩은 시작된다. 하나님은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어떤 일을 대단하게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이 사역의 첫 번째 목표가 되야 한다. 거룩한 삶은 마음으로 죄를 짖지 않는 것이다. 우린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할 때가 있다. 보이지 않기에 쉽게 범하는 죄다. 미움은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 부음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해서 그 사람에게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화하는 것이 좋다.

거룩한 삶은 외모에도 세상 사람과 구별됨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마저 세상 사람들의 흉내를 내며 그들의 죄악된 문화를 추앙하며 따라간다. 거룩은 신발을 벗는 것이다. 신발을 벗는 것은 스스로를 주인이 아닌 종으로 보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상징적 행동이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거룩에서 나온다. 그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주어진다. 거룩한 삶을 살면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나와 이땅에서의 일과의 관계도 나와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관계도 거룩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과 행동으로 죄를 지었을 때는 빠르게 회게해야 한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의 죄들을 회개하고 또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단발적 죄의 용서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함 때문이셨다. 우리 스스로가 거룩한 느낌이 들지 않을 때 더럽고 수치스럽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통로인 예수님으로 다시 하나님의 평안과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면 된다. 그럼 다시 거룩하게 되고 영혼과 뼈 속까지 깨끗하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 거룩하면 열정이 불 같이 일어나게 된다. 거룩하면 담대해진다. 거룩하면 기뻐진다. 거룩하면 단순해진다. 거룩하면 어느새 막힌 문이 열린다. 우리 힘만으로는 안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 있다. 그래서 거룩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거룩은 관념적 언어가 아니라 사역이 되어야 한다.

둘째. 옷을 찢고 창조주 하나님을 전하는 열정을 회복하라 .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을 전했다. 구약의 기록된 창조 이야기를 읽어보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며 하나님의 기쁨을 기록했다. 그 세상을 누리고, 즐기고,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그가 창조한 사람들로 그가 만든 세상 속에서 마음껏 표현하고, 세상을 가꾸며 관리하도록 하셨다.

그 분이 자신의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들은 그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했었는지를 복음서를 통해 보여주셨다. 그 아들의 성품은 거룩하고 온유하고 순결하였으며 사랑 그 자체였다. 아버지 하나님은 이 세상의 온갖 난잡하고 더럽고 추하고 잔인한 자신들을 닮은 신들을 만들어낸 인간들을 용서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셨다. 그리고 다시 부활시켜 이 세상의 어떤 우상의 신들도 흉내낼 수 없는 증거를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거룩이시다. 하나님은 순결이시다. 하나님은 진실이시다.
그래서 그분께 나가는 자는 다 그 분처럼 변화된다. 그래서 그 분을 만나면 그 분의 성품에 감격해서 이렇게 찬양한다. '당신이 옷을 찢 듯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영혼들은 누구인가? 당신이 추구해야 할 하나님의 거룩의 성품은 무엇인가!'

의미 있는 고통

사도행전 14:1-10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없는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설교요약>
고통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의미가 있는 고통과 의미가 없는 고통이다. 의미 있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미리 예비하신 고통이며 그 안에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 크게 고통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일을 회피하거나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르길 주저하곤 한다. 그 때 우리가 겪는 고통이 과연 의미 있는 고통인지 아닌지는 다음 네가지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길로 인도를 받는다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로 옮겨 온 바울에 의해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받은 축복처럼, 하나님이 주신 고통은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 받는 고통이 하나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의미 있는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이 주실 축복의 열매에 집중하게 된다
고통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과 축복의 열매에 집중한다. 고통과 가시는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처럼 고통의 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들과 일들에 더욱 자신의 시간과 삶을 드릴 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열매 맺음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가시로 열매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열매 속에 가시를 박아두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열매의 즙들이 가시를 녹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통 속에서 고통 받음을 원망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와 선물들에 집중해야 한다. 

3. 자신의 일을 스스로 컨펌하지 않고 하나님께 컨펌 받으려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을 따르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그 일을 해결해주셔서 우리가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그러므로 어떤 불가능한 상황 앞에 있을 때가 우리가 주님께 컨펌 받을 때임을 기억하고 간절하게 그 분을 향해 구해야 한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셔서 하는 일인데 하나님이 기적과 표적으로 컨펌해 주지 않으시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4. 누군가 나를 통해 치유되고 은혜를 받는다
바울이 전한 말씀으로 믿음이 생긴 평생 앉은뱅이였던 루스드라는, 바울이 그를 향해 소리친 후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성경에서 보듯 하나님은 병자를 치유하시는데 바울을 사용하셨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그 말씀은 루스드라에게 자신이 낳을 수 있다라고 하는 소망을 주었다. 

이 증거들을 통하여 우리는 과연 의미 있는 고난을 받는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고통이기에 그 고통을 통한 축복의 인도도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으며 고통 그 자체보다는 우리에게 주실 열매를 기대하여야 한다. 또한 고통 안에서 나아갈 때 스스로가 아닌 하나님께 컨펌을 받아야 하며 다른 누군가가 내 고통을 통해 은혜를 받는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고통임을 알기에 우리는 더 깊숙히 고통 속으로 들어가 견딜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길 것이다. 

인정과 믿음의 차이 2

사도행전 13:13-52 (13:42-52) 
42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설교요약>
애굽왕 바로는 10대 재앙을 당하고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자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렇게 고백했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출 12:31) 또한 애굽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 12:36) 결국 이런 보석들은 훗날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짖는데 헌신하는 재료로 드려진다. 결국 애굽 왕은 다시 마음이 변해 이스라엘 백성을 추적하다 갈라진 홍해에 모두 수장되었다. 요점은 바로와 애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고 그들에게 보석까지 주었으나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이다. 인정하지만 믿지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정하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을 42-52절에 바울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믿게된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알 수 있다.

인정이 아닌 믿고 거듭난 사람들의 특징
1) 예배와 말씀을 사모한다. 거듭난 사람들은 정규적인 교회 모임에 사회 활동을 위해 나오지 않고 예배의 말씀을 기대하며 나온다. 당신은 예배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사모하는가? 그렇다면 거듭나 믿는 사람이다.

2)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전에는 세상의 쾌락과 정욕을 쫓는데 관심을 갖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이 가지려 애쓴다.

3)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 것은 그 전주에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나가서 사람들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당신 삶 속에 은혜가 있으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받고 있는 것에 대해 흘러 보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믿음이다.

4) 시기와 방해를 받는다. 유대인들이 시기한 내용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외모나 가진 소유나 자녀나 풍부한 누림들이 아니었다. 세상의 시기와 질투는 외적인 것들이지만 영적인 시기와 질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곳에 갖힌 영혼들을 구해 내는데 있다. 이것이 사단의 시기이고 방해이다. 그 모든 영적 열매의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죽어 있고 고통받는 한 생명을 사망에서 끌어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고 천국을 살게되는 통로로 드려지면서 받는 시기다.  이것은 당신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누군가를 구해내고 있는 데서 오는 사단의 시기고 질투인 것이다.

5)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시기를 받아도 담대하다. 우리는 담대히 살고 싶어한다. 두려움이 없는 마음이 담대한 마음이다. 담대하면 평안하다. 마음이 평안하면 더욱 사랑하게 되고 더욱 진실한 사람이 된다. 이런 담대함은 사람의 비위를 맞춘다고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할 때 하늘로부터 주어진다. 당신은 담대한가? 믿음으로 사는 삶의 증거다.

6)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는 어려움이 오면 무조건 더 낳은 길을 찿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낳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사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7) 믿어지는 은혜를 받은 것을 안다. 믿음의 사람,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고 믿어지는 은혜를 받았음을 찬양하고 기뻐한다. 이 말씀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소망을 준다.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줄 때 항상 경험하는 것은 전혀 기대치 않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신중한 태도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때마다 전하는 사람의 자아가 더 많이 깨지고 성령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믿을 때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된다. 한 사람의 변화는 내 감정이나 생각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

8) 기쁨과 성령이 하나님의 의해 주어지는 것을 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쁨과 성령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선물임을 안다.

인정과 믿음의 차이 1

사도행전 13:13-52 (13:13-41)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 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 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포기하지 않으면

사도행전 13:1-12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설교요약>
사도행전은 바울이 처음 전도 여행을 떠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이 전교 여행을 가게 된 동기는 바나바를 통해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하면서였다. 안디옥 교회에는 바나바와 요한을 비롯하여 니게르라하는 시므온인 아프리카 사람, 루기오라는 구브로 사람, 세례 요한을 참수시킨 헤롯왕의 동생이자 귀족 출신인 마나엔 등이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과 인종, 다른 언어 및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하나가 되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이상적인 교회로 부흥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이 2절에 나와 있다. 안디옥 교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고, 주님의 음성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결정하고, 성령으로 함께 움직이는 생명력이 있었다. 안디옥 교회는 핵심 리더였던 바나바와 바울을 성령의 음성만으로, 흔들림 없이 담대하게 구브로와 살라미 지역으로 파송을 결정했던, 건강한 교회였다. 이 모습은 10년 전 MMC가 하나님의 음성에 의지하여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사우스 다코다 땅으로 선교를 떠났던 모습과 닮아 있다. 그 당시 하나님은 선교팀이 30~40명의 온순하고 착한 아이들을 만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보게 하셨다. 

다시 본문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의 구브로 사역은 평화롭고 순탄했었지만, 6절을 보면 그들은 수도 바보에서 바예수라는 주술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총독의 자문 역할을 담당했던 로마에서 온 사람이었다. 총독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길 원했으나, 바예수는 총독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두 번째 선교지에서 대적하는 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MMC가 10년 동안 사우스 다코타로 단기 선교팀을 보내고 있는데, 첫해의 순탄했던 사역과 달리 이후 매선교마다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아이들이 나타나 선교팀의 사역들을 방해했다. 그런 상황들은 선교팀 마음 속에 이 땅에 소망이 있는지, 이 아이들은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낳게 했다. 게다가 선생님께 반항하며 폭력적 성향을 보인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팀들의 사역은 더욱 힘든 상황으로 내몰려졌다. 이런 과정들로 10년이 채워졌다. 선교팀에게 보인 그 아이들의 폭력성과 협박은 사우스 다코타 선교를 방해하는 바예수와 같았다.

그러나 10년을 포기하지 않고 갔던 이번 사우스 다코타 선교에서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순해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10~11절에 보면 바울은 바예수를 시각 장애인으로 만들고 총독은 마침내 복음을 믿게 된다. 이번 선교에서 믿음이 크게 성장한 한 아이는 “ I am a lost sheep” 라는 고백을 했다. 그 아이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폭력성을 보였던 고등학교 졸업반의 한 아이는 선교팀의 어린 멤버와 친구가 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인디언 전통 파티에 선교팀을 초대하는 일도 일어났다. 사단은 우리를 무섭고 두렵게 만들어 주님의 사역을 멈추게 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멈추지 않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풀어지고 그가 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우스다코다가 우리 인생의 축소판 같지 않은가? 하나님의 인도로 일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순탄하다가 바예수와 같은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하는 그 때에 두 마음이 싸운다. 이걸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 되나? 그 때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풀어지며 일하시기 시작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을 때 사단의 힘이 사라지는 것이다. 총독이 회심할 때가 사우스 다코다 아이들이 회심한 때인 것이다. MMC와 우리들의 삶을 붙들고 있는 것은 사단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선교팀을 두렵게 했던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MMC선교팀과 하나님의 제자들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단을 끝까지 벌하는 분이시다. Don’t give up!!!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역사하시기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으며 늘 하나님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 깊이 알아야 할 하나님의 속성

사도행전 12:11-24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설교요약>
1.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하여’(행12:1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예측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의 부정적 시각과 예측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분임을 신뢰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유익성과 쓸모로만 평가하는 ‘물리적 가치’의 묶인 시각에서, 존재 그 자체로 사랑 받는 ‘존재론적 가치’를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풀어주셨음을 인지해야
한다. 하나님에 의해 풀어진 삶은 '내가 나 된 삶' 이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2. 확신이 없어도 사랑으로 기도하라
확신은 없지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보시고 우리의 약한 믿음과 확신 없는 기도에도 역사하신다.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던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성도들은 하나님이 베드로를 풀어주시리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베드로를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기도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고 믿음이 생기지 않아도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사랑을 보시고 역사하신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 장 6 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3. 막을 수 없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는 위험을 감수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우리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통해 그 사랑을 선택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것이 왕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의 다가 아니다. 무력이나 강제적인 두려움으로 대하지 않고 선택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계속해서 악을 선택하며 행할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은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그리스도인들을 계속해서 핍박해도 헤롯를 쉽게 심판하지 않으셨다. 계속해서 그에게 기회를 주셨다. 그럼에도 헤롯은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세하며 사람들로부터 신처럼 추앙받는 것을 기뻐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실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분을 대적하는 장애물을 제거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의 성품을 더 알아가라. 그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을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변화

사도행전 11:28-12:10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설교요약>
*분노의 사람 야고보의 순교
야고보는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따르기는 했어도 혈기와 야망이 많고 자존심이 강해 자기 희생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초대교회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되었다. 그가 헤롯의 표적이 된 것은 베드로와 함께 그의 초대 교회에 대한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한다. 야고보는 순한 양처럼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을 위해 드렸다. 그는 베드로, 요한과 함께 유일하게 예수님의 두려움과 슬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강하시고 담대하시던 예수님이 연약한 모습으로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 부탁할만큼 예수님께 신뢰 받고 예수님 가까이에서 따랐던 제자였다. 예수님은 야망과 분노의 사람 야고보를 꾸중은 하셨지만 포기하진 않으셨다. 그를 이렇게 순한 양처럼 바꾸신 분은 예수님이셨다.
그의 야망과 분노와 경쟁심을 내려놓게 하신 분도 예수님이셨다. 넓은 가슴으로 초대 교회 사도들과 제자들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던 분도 예수님이셨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야고보는 예수님께 꾸중 받았을 때에도 그 분을 떠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그들이 구하던 보좌를 줄 수 없다고 할 때도 그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도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따랐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 할 때에도 그 야망이 변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스러운 순교를 하게 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 지고 돌아가실 수 있게 해 준 능력의 원천은 성령의 세례였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면서 나쁜 습관들을 버리고자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모습에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울 때가 있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야고보처럼 주님을 계속해서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야고보를 바꾸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령의 세례'를 부어주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잔'을 주실 때 반드시 그 잔에 채우시는 '물', '성령의 세례'도 함께 주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야고보에게 잔만 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세례도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변화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다고 하셨을 때 사단에게 속아 그 앞을 가로막았다가 예수님께 크게 책망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어떻게 해야 사단이 아닌 성령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지를 듣게 되었다.
하나는 자기 부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자기 부인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적극적인 삶의 실천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내면의 치욕을 본 베드로는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만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의 일부를 감추고 나머지를 팔아 하나님께 드렸고, 그 일로 자신들의 이름이 드러나길 원했다. 이 때 베드로는 그들의 탐욕과 사단의 역사를 지적하며 꾸짖었다. 베드로도 전에 탐욕에 넘어가 사단에게 속고 치욕을 당했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성령과 사단의 역사를 분별하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헤롯은 야고보를 죽이고 초대교회 가장 핵심 지도자인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다. 이 투옥은 벌써 세번째였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겼지만 그 중 가장 어려운 것 중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동일한 어려움일 것이다. 어떤 고난이든 해결되면 기쁨이 있다. 그러나 어떤 고난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때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섭섭해지고, 심하면 그분과 거리를 두며, 더욱 심해지면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기도와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관계가 깨지며 내면의 기쁨도 사라지게 된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충성하는 베드로의 삶은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고 변함이 없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보인 특징적 모습
헤롯은 야고보를 죽였다. 베드로도 다음 날 헤롯에게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상황 속에서도 깊은 잠에 들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삶임을 보여준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허리띠, 신, 겉옷을 모두 벗은 채 감옥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베드로는 최대한 자신에게 주신 것을 누리고 즐길 줄 알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전에 예수님이 그에 대해 앞으로 많이 사람들이 그를 띠 띄우고 데리고 다니게 될 것임을 말씀했을 때 평소에 예수님이 사랑하던 제자 요한을 보고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고 물으며 예민하게 굴었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지금 당장 코 앞에 어려움이 있어도, 열등감이나 경쟁심 없이 내게 주신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며 현재를 누릴 줄 알게 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감옥에 있을 때 천사를 보내시어 감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과 아슬아슬하게 파수꾼들을 뚫고 나가가는 걸 보여 주셨다. 불가능하게 보여 도저히 주님을 따를 수 없는 상황임에도 그는 담대하고 묵묵하게 천사를 따라갔다. 베드로는 전에 예수님을 따르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다. 도망가고 부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주님께 맡기고 가면 열릴 수 없는 길도 저절로 열리는 것을 신뢰하며 따라갔다. 당신의 삶에 똑같이 반복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런 문제가 있을 때 닫힘이 있으면 열림도 같이 있음을 기억하라.

착한 믿음

사도행전 11: 1 - 26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 가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설교요약>
스데반의 핍박으로 흩어진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의 지도자로 파송했다. 본문에서 바나바가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다.

  * 1단계 : 소유를 드림
첫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지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삼천 명이 회개했다. 또한, 성전 미문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베드로에 의해 치료 받고 걷게 되었을 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오천 명이나 되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으며, 그 중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에게 가져왔다. 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드리고 난 후 일생의 대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주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으나, 바나바는 지속적으로 놀랍게 변화하고 성장해 갔다.

 * 2단계 : 타인이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
바나바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그의 변화됨을 믿지 않고 그와 교제하기를 두려워하던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바울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며, 바울이 다른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훌륭한 다리 역할을 했다. 바나바는 누군가가 자신을 통해 잘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 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형태도 시간이 지나면 회의를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더 위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더욱 충실한 삶을 살기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만약 바나바가 이런 결정을 했었더라면 그의 성장은 멈추고 점점 퇴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크고 넓은 사고는 점점 좁아지고, 급기야는 타인의 삶에 도움을 주기보다, 타인에게 장애물이 되는 삶으로 전락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한 일의 가치를 알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경우가 있으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우리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큰 능력도 없고, 대단한 것을 주지 못한다하더라도 상대는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을 안다.

* 3 단계 : 착한 그리스도인
스데반의 일로 핍박이 심해져 각지로 흩어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일부는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지금의 시리아인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이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 왔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에 갑작스런 부흥이 일어 났고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인도할 지도자로 '바나바'를 파송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안디옥에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열정적이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었음에도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그들의 지도자로 보낸 이유는 그의 인격 때문이었다. 바나바가 자신의 소유를 드리고 바울의 길을 열어 주는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나바는 계속 착하고 신실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경험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해 봤다는 식으로 허세를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또한 과거에 받은 은혜의 경험을 내세우며 자기 교만과 믿음에 대한 회의에 빠져 주님을 향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힘을 빼는 그런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착한 사람으로 변함이 없었다. 그는 안디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고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격려했다. 착한 마음의 정의는 명료하다. 다른 사람이 은혜받고 사랑받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누군가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처럼 사는 마음이다. 자신은 빛나지 않아도 누군가가 창공을 향해 더욱 비상할 수 있도록 끈이 되어 주는 것이다. 착한 마음으로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착해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착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사도행전 10:1-16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설교 요약>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곳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세 번 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예언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이 말씀을 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 베드로는 자신이 기대하지 않은 사람들과 지역으로 다니며 하나님에 의해 사용을 받았다.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그의 삶이 인도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그분의 말씀대로 사람을 인도하실까? 이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그 분의 약속들을 이루어 가실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

하늘이 열리는 시간 육시에서 구시
베드로는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을 때 로마의 장교 고넬료에게 초청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환상 중에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알려주신 시간은 고넬료의 기도 시간인 오후 3시(구시)이고. 하나님은 베드로에게도 고넬료에 집에 가보라고 보자기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 때 시간은 낮 12시(육시)였다. 12시에서 3시 사이는 예수님께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었고, 동일한 그 시간에 고넬료와 베드로에게는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다. 그 이유는 고넬료에게 예수님을 듣게 하기 위함이였고,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의 그 십자가 사랑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은혜와도 연관되어 있다. 예수님은 전에 포도원 비유를 통해 오전 9시에서 6시 사이에 받는 부름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그 분께 사용되는 특권의 은혜를 받은 것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늘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린다. 그 이름을 믿고 그 분이 십자가에서 9-3시 까지 흘린 피를 믿는 모든 자들이 바로 선택 받고 부름 받은 예수님의 자녀들이다. 그 시간은 우리의 공로나 선행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잊지 않게 하는 증거다.

베드로가 오후 3시에 환상을 통해,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부정한 짐승들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이것들을 먹으라고 명령하신다. 베드로는 먹기를 부정하지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부정한 짐승은 이방인들을 상징하는데, 먹기를 부정했던 베드로 속마음은 그 때까지 율법적이었었다. 분명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순수 유대인이 아니었던 사마리아에 들어가 빌립의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에게 안수했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베드로가 두루 다닌 곳은 유다 안에 있던 다른 이방인들이 몰려 살던 지역까지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이 깨끗하게 한것을 속되다'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이방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혹시 베드로처럼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의 삶도 베드로처럼 마음과 행동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 앞에 그 마음을 고백하며,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려 할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신다.

 

성령을 알아가라

사도행전 9:31-43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제자들

사도행전 9:19-30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마지막 순간에

1 주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 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 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희미한 순종에서 분명한 음성까지

사도행전 8:9-40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하나님을 찾으라

사도행전 8:1-8
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예레미아 33:1-3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 돌아오라_수련회 말씀(2)

에스겔 15:1-4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 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 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