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누리는 평안

누가복음 2:1-20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풀어짐

요한복음 11:37-44
37 그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나사로는 죽은 지 사흘이 지나 다시 살아났다. 예수님이 무덤 밖에서 나사로를 살아나오라 불러내셨을 때, 그를 장사 시 수족에 동였던 베와 수건이 얼굴에 싸여진 채로 무덤으로부터 걸어나왔다. 이 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일러 수건과 베로 싸인 그의 몸을 풀어놓아 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고 살아났지만, 어떤 것에 묶여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사람은 내면에도 양면성이 있다. 선하고 평안해 보이지만, 한편  활화산처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내면의 볼케이노는 풀어짐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풀어주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풀어줄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는 기도로 풀어주라
아합왕과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하나님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셨다(약 5:17). 그러나 3년 6개월이 지나 엘리야에게 비를 약속하셨다. 약속을 받았음에도 엘리야는 비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비 올 기미는 0%도 없었다. 왜 하나님은 비를 약속하시고도 엘리야가 7번 기도하게 하시고, 7번째 마저도 비 대신 손바닥만한 구름만 보여 주셨을까? 이 일로 크게 세 가지가 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엘리야의 겸손이 풀어졌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우상 숭배하는 제사장 850명을 모았다. 그리고 바알의 제단을 쌓게 하고 그들의 신에게 구하게 했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다. 엘리야도 자신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간구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린 불이 제단 나무, 제물 및 도랑물까지 모두 태웠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외쳤다. 그는 한 순간에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그 후 기도하는 것이 쉽게 응답받지 못하자, 그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고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 기도해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 내면에 겸손이 풀어지길 원하신다.

둘째. 사환의 긍정적 눈이 풀어졌다. 
엘리야가 사환에게 바다를 바라보라 할 때, 사환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고했다. 엘리야가 이른 대로 일곱번을 확인하러 가면서 사환은 포기하지 않는 엘리야의 믿음을 보았다. 그리고 일곱번째도 빗방울이 아니라 손바닥만한 구름 조각 하나만 보았다. 측량 불가능하고 무한한 하늘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을 본 사환의 눈은 믿음의 눈이었다. 엘리야는 그 작은 구름을 보고 아합에게 비에 막하지 않게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 선포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누구나 긍정적이고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안좋으면  부정의 심리도 드러난다. 사환은 부정적 상황에서 엘리야의 큰 소망과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 믿음과 기도를 보았다. 믿음의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낳는다. 이 때 이 것을 본 두려움에 쌓인 부정적인 주변 사람들의 소망이 내면에서 풀어지기 시작한다. 소망은 소망을 낳는다.

셋째. 선포가 풀어졌다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 아합 왕에게 큰 비가 올 것처럼 미리 선포했다. 하나님은 손바닥만한 구름을 통해 엘리야로 담대히 선포하도록 풀어놓으셨다. 그리고 그 선포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주시는 단어를 붙들고 기도하라. 성령의 감동을 붙들고 선포하며 기도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선포한대로 행하신다.
예수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믿음으로 준비하고 행동하길 원하신다. 부족함과 불가능과 부정적 상황 속에서 겸손이 풀어지고, 부정적인 사람들 내면에 소망과 긍정이 풀어지고 선포가 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바다 같은 아름다움도 있지만, 분출하는 용암과 같은 분노도 있고 아픔도 있다. 어떤 용암은 조용히 바다로 흘러들어 육지를 만들 듯 그 삶의 지경을 넓힌다. 반면 어떤 용암은 땅을 뒤덮고 파괴하듯, 분노로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스스로의 삶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풀어지는가의 차이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분노가 풀어질 때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부족함과 위기의 부정적 상황을 통해 많은 것을 풀으신다. 당신이 처한 부정적 상황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받고자  하시는 당신의 태도와 믿음과 행동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번 사우스 다코타 선교를 통해 풀어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푸시고 계신가?

차고 넘치는 행복

요한일서 4:7-12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설교 요약>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하버드대 로버트 왈딩거 박사팀의 75년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부와 명예 또는 노력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성취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건 “좋은 관계’라는 사실이 그들이 발견한 가장 분명한 메세지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런 결과가 사실 조금도 놀랍지 않다. 하지만 왜 우리는 부와 명예를 위해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거라는 허망한 거짓에 반복적으로 속으며 계속해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을 아깝게 여기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자리로 오르는 것을 위해 우리들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걸까? 이유는 ‘죄’ 때문이라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죄가 우리에게 들어와 저지른 일이 사람간의 관계를 깨트리는 일이었다. 사람들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죄로 인해 깨어졌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깨졌고, 그 영향으로 인간 사이의 관계도 깨진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와 해결방법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행복과 건강은 로버트 왈딩거 박사팀의 연구 결과처럼 우리가 맺는 '관계'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설 때에만 가능하다. 하나님과 화목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두둔하거나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행위를 극히 혐오하신다. 세상의 왕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법을 바꾸지만, 하나님은 그러실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행하셨다. 악인을 의롭다 하시고, 의인을 악인으로 재판에 넘기시어 형벌과 죽음의 고통을 겪게 하셨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한 인간이 모든 인류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자식처럼 지으셔서 함께 그 분의 피조물들을 관리하게 한 아담의 가치를 대신할 피조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 아담의 모든 자손들을 다 합친 가치를 가진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밖에는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두 가지 자격을 가진 유일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것이다. 단지 갈등이 없는 평화와 평안의 상태가 아니라 행복을 동시에 의미하는 화목제물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해 주신 방법이라 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헷세드_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
헷세드는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방식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화목제물을 통해 죄를 짓기 전 아담의 신분과 권세를 회복했다. 이제 법적으로 신분이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진정한 화목을 이루었는가? 한 집에서 최소 몇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족이 일주일에 단 몇 분 정도만 대화를 한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화목하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서운한 점이 있는가? 하나님이 두려운가? 어떤 계기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하게 되었을까? 기대하지 않는 마음, 마음을 터놓지 않은 태도가 그 분과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 삶에 어렵고 힘든 문제를 허락하실 때가 있다. 그런 때에 하나님께 서운하고, 원망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혹시 그 계기로 인해 하나님께 등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삶에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어려움을 허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런 때에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그 분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동일하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여러분 중에 혹시 어떤 시련의 기억 때문에, 응답되지 않은 기도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제는 먼저 하나님과 화해하길 바란다. 예수님을 만나고 풀어진 관계는 셀 수 없이 많다. 진정한 화목은 하나님과 먼저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함축적이고 분명한 계명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해야 이웃과도 화목할 수 있다.

꺼지지 않는 은혜

나훔 1:1-8
1 이것은 엘고스 사람 나훔이, 니느웨가 형벌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쓴 묵시록이다.
2 주님은 질투하시며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원수를 갚으시고 진노하시되, 당신을 거스르는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며, 당신을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하신다.
3 주님은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고 권능도 한없이 많으시지만, 주님은 절대로, 죄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회오리바람과 폭풍은 당신이 다니시는 길이요, 구름은 발 밑에서 이는 먼지이다. 
4 주님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말리시고,모든 강을 말리신다. 바산과 갈멜의 숲이 시들며, 레바논의 꽃이 이운다. 
5 주님 앞에서 산들은 진동하고, 언덕들은 녹아 내린다.그의 앞에서 땅은 뒤집히고,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곤두박질한다.
6 주님께서 진노하실 때에 누가 감히 버틸 수 있으며, 주님께서 분노를 터뜨리실 때에 누가 감히 견딜 수 있으랴? 주님의 진노가 불같이 쏟아지면, 바위가 주님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7 주님은 선하시므로, 환난을 당할 때에 피할 피난처가 되신다. 주님께 피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지만,
8 니느웨는 범람하는 홍수로 쓸어 버리시고, 원수들을 흑암 속으로 던지신다.

<설교 요약>
유대인들은 원래 성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포로생활 이후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서 회당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는 5개 정도의 (에세네파, 열심당, 헤롯파, 사두개파, 바리새파) 당파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은 율법을 정치적, 종교적 유익에 따라 판단하고 해석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를 이루는 데 일조하게 된다. 특히 바리새파들은 유다가 멸망한 이유가 바로 율법에 대한 무지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교리화하고 체계화했지만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고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있다. 

오늘의 본문은 엘고스 사람 나훔이 앗수르에게 주는 멸망의 메시지이다. 그의 예언은 니느웨 백성이 요나를 통해서 회개했지만 다시 옛 행위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진노한 메시지이다. 마태복음 12: 38-45에 보면 주님께서 니느웨 백성이 회개한 모습을 회개치 않는 바리새인들과 비교하신다. 요나서와 나훔서는 니느웨의 멸망과 회개를 촉구하는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요나서는 회개로 그 성이 심판에서 구원받았고 나훔서는 다시 타락한 그 성이 회개를 촉구하지만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두 책은 시간적으로 한 세대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성의 운명도 구원과 심판이 별개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우리에게도 요나의 시대와 나훔의 시대가 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고 회개를 통해서 구원의 기쁨을 누렸지만 나훔의 시대와 바리새인과 같이 형식적인 기도와 봉사, 열심으로 살 때도 있다. 하나님은 선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지 않으면 심판 하신다. 만약에 우리가 죄를 지어도 심판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고아인 것이다. 심판은 두렵지만 심판을 보류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회개할 수 있다. 

나훔 1장에서 2-7절에 하나님의 다섯 가지 성품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다. 그 어떤 은혜와 열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던 사람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예수님께 죄를 회개하며 구원의 길을 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한 모든 진노가 십자가 위로 쏟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다. 셋째는 하나님은 권능이 크신 분이다. 도저히 무너질 수 없던 견고한 니느웨성도 홍수로 인해서 쉽게 무너진다. 우리의 성공과 열심으로 쌓아온 견고한 것도 하나님 앞에서 티끌이다. 넷째는 하나님은 진노하실 때는 무섭게 진노하시는 분이다. 노아시대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처럼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죄악을 싫어한다. 우리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섬겨도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죄를 범할 수 있다. 다섯째는 하나님은 선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 2의 요나와 같이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의인의 삶으로 살아갈 때 선하신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임하신다.  그럼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나훔서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죄가 나온다. 그것은 바로 교만의 죄이다. 이 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전혀 생각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교만의 결과는 패망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신다. 바울과 스데반 집사 같이 바리새인으로 태어나 자라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교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꺼지지 않은 은혜이다.

진리와 사랑을 입으라

에베소서 6:10-14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설교요약>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때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고, 3차 선교 여행 때는 에베소의 두란노에서 2년 동안 제자들을 양육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영적으로 활기찬 교회로 세우게 된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이 바로 에베소서인데, 그 서신은 성도들에게 영적 싸움에 대해 알려준다. 특히 1장에서 에베소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믿음으로 산 것에 대해, 바울은 늘 감사했지만 편지에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더욱 더 그 분의 힘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권면의 말씀을 하게 된다. 그럼 왜 주 안에서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11절에 나오는 마귀의 간계(길, 방법)이다. 따라서 성도가 믿음과 사랑이 있고 스스로 선 것 같더라도 더욱 더 주님 안에서 강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마귀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공격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시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세가지로 유혹한다. 바로 “돌을 떡으로 되게 하라” 그리고 “성전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하라”,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 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들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신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부 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 4:7)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이때 싸움에서 패배한 마귀는 떠나갔다. 그 영적 싸움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마태복음 4장 24절에 보면 마귀(루시퍼)의 졸개들인 귀신들도 패배하게 된다. 즉 마귀의 유혹인 세상의 영광, 과시욕 그리고 정욕들을 물리치면 그의 졸개 귀신들도 힘을 잃는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면 두 가지 유익이 있는데 그 하나는 그 전쟁을 통해서 더욱 더 성령의 사람으로 강해지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원수 사단이 패배하면서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영혼들이 어둠에서 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의 중요한 이유이다. 

마귀는 아직도 이 시대의 사람들의 세계관을 통해서 당신이 눈으로 볼 때 위대한 일을 해야만 당신이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하라고 명령한다. 그 첫 번째 무기는 진리의 허리띠다. 진리를 취하지 않으면 영이 힘을 쓰지 못한다. 진리의 반대말이 거짓말인데 이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바로 진리인 것이다. 야고보서 2장 2-4절과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 보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차별하지 말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내면이 외적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한다면 스스로를 먼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음성, 즉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을 곁에 있게 하셨다. 성령님이 없이는 누릴 수도 필요를 얻을 수도 없다. 그런 의미로 성령님은 상속의 담보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받기에 충분한 담보가 없다. 그러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담보로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담보로 주셨다. 그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신다. 

두 번째 무기는 의의 호심경이다. 사단은 사랑의 능력을 잘 알기에 집중적으로 심장을 향해서 공격한다. 생명의 근원이고 사랑의 시작인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흉패로 보호해야 한다. 이 흉패는 바로 예수님의 심장이다. 조건 없이 계산 없이 무조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을 줄 때 조심하라고 한다. 누가복음 14장 12-14절에 보면 예수님은 다시 받기 위해서 조건적이고 계산적으로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런 초대와 대접은 마지막에 하나님으로부터 상이 없다. 그러나 다시 되돌림 받지 못했거나 혹시 다시 되돌림 받는 베풂을 주었어도 계산 없이 순수하게 했다면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따라서 계산하지 않고 준 것에도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이 땅에서 보상 받아도 천국에서 다시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계산적인 사랑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할 때 의의 흉패를 우리의 심장에 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소망이 없어 보이는 겨울나무처럼 도저히 살수 없을 것 같고 변화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곤 한다. 그러나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시 부활시키고 바꾸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무리 소망 없고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부자 청년

마태복음 19:16-23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설교요약>
몽골에 마더스데이 카드를 보냈는데, 그 카드의 배경 이미지는 바로 몽골이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에서 카드를 받으신 분은 이 카드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미국인 줄 알았습니다. 맨하튼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맨하탄에 거주하는 분들이 맨하탄 이미지에 감동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즉 본인들이 사는 지역과 환경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10년 전 미전도 지역이었던 몽골로 파송될 때 런던과 스페인과 같은 유럽이 선교사 필요 지역이 되버렸습니다. 100년 전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던 유럽이 지금은 미전도 지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바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지상 명령이며, 그 말씀 위에 예수님의 교회들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자 축복입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후진국에서 선교할 때 직면하는 문제가 바로 가난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세례를 받았어도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앙을 버리고 떠나는 현지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고 축복을 받았지만 1~2년이 지나도 삶의 변화가 없고 오히려 지속되는 삶의 고통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구호 단체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이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보내지고 있는데도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구호 물자는 현지인들에게 일시적 해결책은 되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물질적인 구호는 현지인들이 가난을 극복하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가난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의지가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난의 원인은 바로 관계의 단절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그리고 이웃들과의 관계 단절로부터 기인합니다.

그럼 왜 이런 관계의 단절이 생기는걸까? 이것은 바로 정직하지도 근면 하지도 않고, 믿음도 없는 성품이 원인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성품으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문화 및 사회적 구조와 나아가 나라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관계로부터 오는 우리의 나눔은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눔과 희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미국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개인주의 입니다.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 이유는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부자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19장 16-23절에 보면 영생을 얻기 위해 계명을 지킨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라'하신 말씀을 거부합니다. 부자는 재물이 많다는 뜻인데 부자 청년은 아직도 스스로가 가난하다 생각해서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눔을 거부한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사실 예수님의 눈에는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 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전 재산의 사분의 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 삭개오와 예수님의 무덤을 제공한 아리마대 요셉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부자는 나누는 자입니다. 이것은 희생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교는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이 따르는 행위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입니다. 이것이 미국을 지키는 힘이며 하나님이 이 미국을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맨하튼은 가장 복음화가 안된 지역입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분들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영성

누가복음 1:80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설교요약>
심령이 강해져야 할 이유
최초의 아담과 하와의 영은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듣고 이끄시는 대로 순종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이 무엇인지 쉽게 분별했으며 마음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 그들의 영과 마음은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벗은 자신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당시 에덴 동산에 계시던 하나 님은 그들을 수치스럽게 보시지 않았다. 또한 아직 사람들은 그들 둘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건 강했던 마음이 퇴색되었다.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것은 그들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있었 다. 한가지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것은 아담과 하와는 심령이 강해지기 위해 무엇을 한것이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했을때 범죄하기 이전에 그들의 심령은 강해 있었다. 심령이 강한것은 수치심, 두려움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과 자유와 기쁨의 영혼의 생동력으로 드 러났다. 또한 그들 스스로 심령을 약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불순종 했을때 그들의 영 혼은 두려움과 수치감으로 약해졌다. 강해지는 것도 약해지는 것도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다.

광야의 영성
요한의 심령이 강해진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함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 었다. 그가 그렇게 계속 강해질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동적인 반응에 있었다. 그는 '광야'에서 성장 했다. 광야는 조용하다. 조용하면 생각이 맑아진다. 생각이 맑아지면 어떤것이 하나님의 생각인지 사단의 생각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을 붙잡게 된다.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이다. 광야는 볼것이 별로없다. 볼것이 많으면 시선이 분산된다. 시선이 분산되면 마음이 불안 해 진다. 광야는 인위적으로 만든것 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보게 해준다. 상점도 사람도 집도 없다. 오직 자연뿐이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을 바라볼수록 시선이 하나님께로 집중된다. 영이 새로워 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 광야는 소유가 없다. 광야는 집이 아니라 텐트를 사용한다. 광야는 적은 가방일 수록 좋다. 옷도 먹는것도 소박하다. 소유가 많아질수록 근심도 많이진다. 소유가 적어질 수 록 탐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넓어진다. 광야는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에 집중할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광야가 내면에 평안과 담대함을 주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신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 무리 광야에 있어도 무언가로 빈내면을 채우기 위해 불안해 한다.

예수님은 광장의 삶을 즐기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셨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셨 고 어떤결정을 해야 할지 아셨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아셨다. 그런 명료하고 단순한 삶은 예수님의 광야의 삶에 있었다. 영혼의 광야가 뿌리라면 광장의 삶은 열매다. 광야 없는 광장의 삶은 쉽게 깨 지고 상하고 동화되고 절망케 한다.

광야의 열매들
1)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가치를 보는 영혼의 눈을 주셨다.
사람은 자기가 가치를 둔것에 의해 그 행동이 결정된다. 만약 요한이 외적인 옷이나 장식품과 물질 의 양에 가치를 두며 살았다면 그는 이런 엘리트의 사람들의 외모와 가진것 앞에서 눌리거나 움추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전혀 이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음을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며 선포 하는 말속에서 알수있다. 이런 진정한 가치를 볼수 있는 눈은 세상의 쾌락과 정욕을 멀리하며 거룩 한 삶과 고독한 삶을 추구한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낸 그의 축척된 삶에 있었다.

2)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평가하게 한다.
요한이 자신을 대중에게 대단한 선지자로 어필하기 위한 영웅심리도 아니었다. 가진 자들에 대한 반 감과 열등감도 아니었다. 요한은 종교지도자들과 가롯유다가 안정감을 두었던 돈과 사람에게 안정 감을 두지 않았다. 요한은 사람이나 명예나 돈이 아닌 하나님께 자신의 평가를 맡겼고 안정감을 두 었다. 이것에 대한 증거는 그의 고백속에 있다. 요한은 이사야를 통해 700년전에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임을 알았다.

- 요한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랑했다.
그가 독설을 퍼붓는것 같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 더 이상 이용과 위선과 두려움으로 살지 않고 자유와 기쁨과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는 진실이 있다.

- 요한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정직했다.
자신에게 나오는 엘리트를 이용해 권력과 호사와 인기를 누리려는 욕심이나 이용의 마음이 전혀없 다. 이 모든것과는 비교할수 없는 하나님의 크심을 알았고 그분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광 야에서 알았기 때문이다.

- 요한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원했다.
그래서 진통제가 아니라 예수님께 근본적인 수술을 받게했다. 광야의 시간을 회복하자.

천국의 열쇠

누가복음 1:57-79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저희가 가로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으니 
63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하심이러라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설교요약>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사가랴는 성령 충만함을 얻었고 아무나 볼 수 없던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통찰할 수 있었다. 과연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

원수로부터 구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통찰
누가복음 1장 71절에 보면 성령의 감동으로 사가랴는  그의 피로서 우리를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구원하실 예수님을 예언했다. 우리는 죄인이고 그 죄값을 치루기 전에는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그 모든 빚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이 모두 지불하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빛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사랑과 기쁨으로 주를 섬기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2-4) 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의미한다. 즉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속한 시민들이기 때문에 천국의 영향력과 축복들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요구하는 규칙과 원칙들을 순종해야 한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행하여 항상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바울이 이미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이다. 천국의 축복은 사랑과 진리 안에 있으며 진리는 예수님을 나타낸다. 즉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성경 말씀을 전하면 우리 내면에 진리가 가득 찬다. 또한, 'The Truth'는 '진실'로 번역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은 진실된 말과 행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 천국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자유, 기쁨, 평안,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채우게 된다. 또한 이런 진실은 사랑에 기초를 둔다. 구약의 요셉과 그 형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누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순수함과 배려심
야곱은 라헬의 몸에서 난 요셉을 다른 자녀들 보다 더 사랑했다. 이로 인해 요셉은 17세 나이 다운 순수함도 있었지만, 다른 이의 감정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모습도 갖게 되었다. 그의 이기적 언행으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정말로 형들을 좋아해서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주신 꿈을 두번씩이나 형들하게 전하게 된다. 그로 인해 분노한 형들이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린다. 그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다.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려 온 형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요셉 안에 있던 사랑을 더욱 더 성장시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분량까지 만들어 주신다. 이런 인격의 변화 과정에서 천국의 축복이 흘러온다.

형들의 문제
아무리 미워도 형들을 만나기 위해 3일 동안 10시간을 걸어온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아버린 형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첫째, 멀리서 요셉을 먼저 보고 죽이기를 꾀한 것이다. 둘째, 요셉의 말을 마음에 쌓아놓고 증오했다. 셋째, 요셉의 꿈을 축복하지 않고 저주했다. 넷째, 아버지의 고통을 즐겼다. 요셉과 아버지를 향한 섭섭함과 미움이 형들에게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는 잔인했고, 악했다. 요셉의 형들이 이런 악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형들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닮았다. 우리가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으로 반응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아야 한다. 요셉의 이야기는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노예로 애굽에 끌려간 것이 다가 아니다. 임금의 신하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옥에 간 것이 끝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두번째로 높은 직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주변국들이 흉년이 들 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로 인해 온 가족들의 살 길이 열렸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 우상의 땅에 드러냈다.

당신의 삶이 막힐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짓지 마라.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가랴가 성령으로 통찰한 예수님을 통해서 온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한다. 

더 깊은 은혜를 위하여

누가복음 1:24-56
24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25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5개월 동안 그 사실을 숨기며 은밀하게 살았다(눅1: 24) 그녀 평생의 치욕을 없애 주시기 위해, 늙은 나이임에도 주님께서 아이를 잉태하게 해주셨다 그녀는 고백했다(25) 엘리사벳은 누구 보다 경건한 여인이었고 평생을 하나님을 섬기고 따랐음에도 그녀 내면은 수치심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치욕이 아니라, 엘리사벳이 결핍 속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그린, 잘못된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수치심이었다.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사람들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런 잘못된 수치심으로 마음이 슬프고, 심하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닫게 하는 감정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것이 주님을 따른지 오래 되어도 치유는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삶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주어질 때 사단의 속임을 주의해야 한다. 사단은 크고 작은, 많은 고통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수치심을 갖게 해 우릴 묶어두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상처를 없애주시고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이 확신이 중요한 것은 당신이 대단한 일을 했거나, 대단한 것을 소유했을 때에도 계속 그 분의 은혜를 붙들며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사벳 임신 6개월째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28) 라고 하고 다시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30) 라며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했다. 그녀에 대해 특출난 그 어떤 것도 기술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가 평범한 시골 아가씨였음을 보여준다. 마리아가 선택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엘리사벳도 마리아도 공통점은 은혜로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럼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아들 예수를 잉태하여 낳는 것이다. 마리아는 약혼을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고 싶어 결혼을 기다리는 지극히 평범한 젊은 처녀였다. 그분의 이런 계획은 마리아의 삶을 힘들게 할 것이 뻔했다. 사람들에게 오해, 멸시, 거절, 미움 받을 것을 각오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주시면서 은혜라고 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은혜와 다를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우리를 통해 하실 때 어떻게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가? 다음 네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계시 (Revelation)-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미리 보내셔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것과 다니엘의 환상의 의미를 계시로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우릴 향한 그분의 비전을 알려주신다. 비전이 없는가? 성경과 성령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 영혼에 향기처럼 스며들 것이다.

2) 동의(Consent)- 예수님은 자신이 베풀어 주신 초자연적인 기적 자체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 되길 원치 않으셨다. 그 능력을 베푸신 하나님 자신을 주목하고 믿기를 원하셨다. 어떤 일에 동의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다. 그 일에 대해 적극 행동 하겠다는 의지의 결단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분과 교제도 없다. 교제가 없으면 기쁨도 없고 사랑과 행복도 없다. 믿음은 일이 아닌 하나님 자체 그분의 인격을 그리워하고 주목하는 것이다. 우린 일 때문에 힘든 것 보다 사랑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 삶이 힘들어 질 때가 많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 마음에 넣어 주신 본능이다.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3)확인 (Confirmation)- 세번째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은 확인이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성령의 감동으로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대화한 것을 옆에서 들은 사람처럼 모두 알고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말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을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을 성령의 사람을 통해 확인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어떤 비전이나 사명을 이미 동의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다시 컨펌해 주신다.

4) 확신 (Assurance)-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알려주어도 내게 확신이 없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자주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에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전이 흐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권 적인 기름부음으로만 확신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받은 순간부터 이루어 지기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묶여 있는 영혼을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풀어놓는 권세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때 가장 먼저 우리의 영혼이 더욱 자유케 되고 담대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자유케 되는 것,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을 세상에서 죄에 매여 살던 영혼들에게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미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아직도 내면에 더 터져 나와야 할 생수들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분의 비전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들에게 더 깊이 있는 은혜를 주시기 원하신다. 당신은 그분의 비전을 사모하는가? 

더 큰 믿음을 위하여

누가복음 1:1-23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22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바울에 동역자였던 누가는 데오빌로다라는 로마의 고위직으로 추정되는 수신자에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헌정한다. 하지만 누가는 데오빌로와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전 세계의 이방인들에게 이 책들을 기록했을 것으로 본다. 누가는 8번째 반열에 속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으로 누가복음을 시작한다.

결핍 속에서도 주님 말씀대로 사는 자들을 향한 보상
6절에 보면 사가랴만 의로운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도 의로운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 삶의 결핍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묵묵히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갔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이가 많아 잉태할 수 없는 엘리사벳에게 잉태할 것 라는 메시지를 준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시절이 다 지나간 다음에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어떤 일들이 진행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늘 하나님이 앞에 계심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의인인 것이다.

번거로운 과정을 선택하신 이유

13절에 보면 ‘네 간구를 주님께서 듣고 계신다’ 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가랴가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기도를 어느 시점부터 계속해서 듣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마 사가랴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못하며 그 이유로 10달동안 말을 못하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하고 사람들이 중보기도를 할 때 이 같은 일을 하셨을까? 그 이유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더 큰 믿음으로 살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더 큰 믿음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계속 듣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 때에 아무리 나의 처지가 불가능한 상태라도 이루실수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어떤 것을 구할 때 그것이 오지 않았다고 중단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다른 것으로 변형해서 주실 때에는 그것을 중단하고 다른 것을 구해야 한다.

둘째, 큰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어떤 것들이 주어지기 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만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매사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그분의 음성을 먼저 들으려 한다. 이것이 큰 믿음이다. 그래서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광야의 학교를 통과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이다.

셋째,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장애를 가능케 하시는 말씀을 믿으라. 20절에 보면 사가랴는 세가지 숙제를 천사로부터 받았다. 첫째는 지금부터 말을 못하게 된다. 둘째는 10개월 후에 다시 말을 하게 된다. 셋째는 아이가 10개월 후에 탄생한다. 사가랴는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기도해 왔던 것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이 이루어 지면 그는 자신의 이성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신뢰하는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숙제를 주신다. 숙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 해야 한다. 숙제를 통해 지식을 알아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숙제는 현실이 한계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는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을 맛볼 때 우리는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도 평안히 담대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더 큰 믿음으로 변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준 숙제 현실의 벽은 무엇인가?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사람들

사도행전 28:11-31
11 석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29(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설교요약

첫째, 만남을 통해 일으키는 성령의 불꽃
바울은 처음 와 본 로마에서 풍랑을 만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그를 로마에 도착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원하는 땅에 바울이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에는 하나님이 일으키는 위로와 도움의 사람들이 있다.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그곳에 있는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나왔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바울을 만나기 위해 각기 다른 지역으로 부터 먼길을 달려온 것을 의미한다. 이 사람들은 약 30년 전에 (AD33년경/60-62년) 예루살렘에 왔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제자들이 각국의 언어로 방언을 하는 것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지 25년이 흘렀는데도 그 사랑은 뜨거웠고 순수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적으로 볼때 바울은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로마에 온 것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도착했음에도 그들은 그가 복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고 큰 위로를 받았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던 사람들이 따뜻한 사람들로 변한다. 인종과 언어와 피부색과 빈부귀천으로 사람을 나누던 사람들이 그런 모든 것을 중단하고 모두를 존귀하게 대한다. 그 사람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감동으로 정과 사랑을 주기 때문에 그 만남들을 통해 서로가 재충전되고 채워지고 회복되는 성령의 불꽃(Spark)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너희는 성령의 약속하신 성령으로 표, 도장이 찍힌 사람' 이라고 말씀 하신다. 한번 찍힌 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도 그 소유권을 바꿀수 없고 빼앗아 갈수 없다. 표는 소유권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며 누구의 소유인가를 분명하게 가늠하게 해준다. 성령은 우리가 많은 것을 해줄순 없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일들을 기쁨으로 하게 하신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게 하신다. 죄를 회개케 하시고 마음이 완악해 지려고 할때 은혜로 녹이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분의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낼수 없다. 사단은 아무리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으려 해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신다.


둘째,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땅에는 제한적인 상황을 통해 이루시는 무제한의 일들이 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정부를 통해 바울이 셋집을 얻어 민간인과 섞여 살수 있도록 그 삶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들을 초청해 복음을 전했고 이방인들도 초청해 복음을 전했다. 더욱이 바울은 이 2년의 투옥생활을 하면서 지4권의 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들을 써서 교회로 보냈다. 이 서신서들은 지금 이순간도 어둠에 묵인 영혼들을 영혼들을 자유케 해주며 천국을 누리며 살게 해주고 있다. 2000천년 동안 셀수없는 사람들을 살리고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이 최고의 성경이 바울이 가장 제한적이고 육체적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을 때 탄생했다. 우리는 주변의 화려하고 큰 일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작아지고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심하면 하나님에게도 거절감을 느끼게 되고 상대적인 열등감에 젖어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작기 때문에 제한적이기 때문에 타인이 할수없는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들이 많이 있다. 바울은 자신의 묶임을 본것이 아니라 자신의 묶임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무제한의 능력을 보았다. 하나님은 약하고 힘없는 자들 이라도 그분을 의지할 때 아무도 해하지 않도록 자유롭게 왕궁을 드나들듯 많은 곳들을 왕래하게 하시는 것을 보여주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 분을 의지할때 부지런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개미처럼 준비하고 예비하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주시는 분임을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이 사도행전 29장을 써 나가길 원하신다. 그러려면 내 안에 사는 분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이심을 날마다 의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만이 하실수 있는 일들을 주목하며 귀하게 여기며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부활의 증거들과 목적

누가복음 24:1-12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 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설교요약>
예수님 부활의 네 가지 증거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였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안에 장사를 지냈으며 주로 여자들이 시신에 향유 바르는 일을 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금요일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지 못하고 안치했고, 다음날은 안식일이어서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은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예수님 부활 사건에 대한 이런 성경의 구체적 기록은 그 당시 유대 문화 및 장례 풍습들과 일치하며,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한다.

두 번째 증거는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 문이 굴려져 나간 것을 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냥 ‘무덤 문을 열었다’ 가 아니라 ‘굴려져 열려 있었다’라는 증언 또한 그 당시 무덤 형태와 일치하며 역사성을 지닌다. 예수님 현존 당시 유대인들의 무덤은 바위를 파서 입구를 무거운 돌로 막고 시멘트로 바르는 풍습이 있었고, 성경은 이 장례 풍습과 일치하는 구체적 기록을 남겨 놓았다. 마가는 이 여인들이 인봉되어 있는 무거운 무덤 문을 누가 열어줄까 걱정하며 무덤을 찾아왔다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덤문은 굴려져 열려 있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할 때 때로 무덤 문처럼 막혀 있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 막힌 문들을 열어주시는 분이다.
부활이 실제였다는 세번째 증거는 무덤을 찾은 여인들 앞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과 성품에 있다. 흰옷 입은 두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너무 눈부셔서 여인들은 얼굴을 숙였다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들과 일치한다. 눈부신 광채를 내는 천사들은 자신들의 모습에 집중하지 않게 하고 갈릴리 에서 부활을 예언하셨던 생전의 예수님의 말씀을 여인들에게 생각나게 했다.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시킨 천사들의 겸손한 성품은 성경 곳곳에 기록된 천사들의 성품과도 일치한다. 이 시대의 천사는 자신이 아닌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누구를 주목시키며 살고 있는가?
네번째 증거는 예수님 부활 사건에 대한 가감 없는 구체적 기록에 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인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일을 알렸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를 뺀 남은 제자들의 수, 실존 인물임을 나타내는 여인들의 이름 에 대한 구체적 언급, 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까지 찾게 된 이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과 베드로의 반응 등 꾸미거나 가공한 흔적 없이 기록된 점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일어난 사건임을 입증한다. 여기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현존 했던 동시대 가장 저명한 유대 정치가이자 역사가였으며, 예루살렘 태생의 비기독교인인 흘라비우스 죠세프스의 책 유대 고대사(Antiquities)에도 선하고 지혜롭고 뛰어난 학식을 지녔다고 소개된 예수님의 현존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 및 그리스도인들의 부흥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 부활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실제했던 분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네 가지 변화
첫째, 영혼을 뜨겁게 한다. 여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사도 외에 두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30리 떨어진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던 두 제자에게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해 증언함을 풀어 해석해 주셨다. 예수님이 사라지고 났을 때 그들은 예수님 생전에 말씀을 들을 때처럼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음을 서로 나누면서 그 분이 예수님이신걸 알아챘다. 둘째, 엠마오 제자들은 그 길로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열 한 제자와 모인 무리에게 그 일을 알렸다. 부활을 믿으면 그 소식을 나누며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한다. 세째, 엠마오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빵을 떼어주실 때 자신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증거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슬픈 일이나 답답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잘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신다. 마지막 변화는 꿈같은 현실을 종종 선물로 받는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너무 기뻐 놀라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너무 기뻐 믿을 수 없는 꿈같은 현실을 계속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 부활은 꿈같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활을 보여 주신 목적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라 하였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에 증인이다’(눅 24:47-48) 복음서에 나약한 제자들과 달리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며 순교했다. 예수님 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기에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의 뿌리인 죽음이 두렵지 않고 내게 주신 오늘의 하루 하루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실존하셨고, 부활로 우리의 생애를 천국으로 주셨고, 부활의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길 원하신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을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부활을 믿는 사람이다.

영혼의 시신경

사도행전 28:1-10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7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8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9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10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설교요약>

예비된 섬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그레데 섬 미항에서 항해가 위험할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한 항해를 했고 결국 배는 표류했지만, 기적같이 멜리데 섬에 도착했고 원주민들은 특별한 동정으로 이들을 대접했다. 우리는 살면서 무리하게 우리의 욕심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셔도 아무런 말도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찾는 원초적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1:19). '창세로 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19-20) 하지만 하나님을 알아볼수있는 마음이 죄로 인해 어두워 지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시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 하나님은 전도를 미련한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가면 일시에 동공을 통해서 필요한 양을 초과하는 빛이 눈의 망막으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이때 필요 이상의 빛을 시신경이 처리할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신경이 마비 된다고 한다. 이처럼 어두움 가운데 오랜시간 살다보면 마음이 어둠에 익숙해 져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주어도 그것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시신경이 마비된것 처럼 영혼이 마비되어 죽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혼의 신경을 살려 다시 하나님의 빛을 받아드릴 수 있게 하는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죽었던 영혼의 시신경이 살아난다. 당신은 삶에서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하나님을 느끼고 있는가? 당신의 영혼의 시신경은 깨어났는가?

살아난 영혼들의 특징 두 가지
첫째, 빛을 잘 흡수한다.
우리가 살면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 어려움을 겪을때 빛을 흡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대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회개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이 그런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섬으로 인도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본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잘 따라가기 위해 계속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계속 기도해야 한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집중해서 따라가야 한다.하나님이 인도하신 섬에는 사람들의 도움과 긍휼이 있었다. 또 전혀 뜻하지 않을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보호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 사도행전 28장 4-5절을 보자.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둘째, 어려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하다.
다음에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뱀에 물린 이 아무 의미없는 우연같은 일을 통해 하나님이 그 멜리데 섬에서 놀라운 일을 일으키신 것이다. 바울이 뱀에 물리는 일로 인하여 섬의 추장같은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그를 자신집에 초대했고 바울은 그의 열병과 이질에 걸린 부친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해 주었고 기도를 통해 나았다. 미신적인 풍습이 가득했던 그 섬 전체에 예수님의 복음이 빠르게 전해졌다. 마비된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도한 섬인데 왜 다시 이렇게 독에 감염되고 물리고 덫에 걸리는 일이 일어났는가? 라며 절망과 낙담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 우연 같은 의미 없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이 있다면 당신 영혼의 시신경은 살아있고 왕성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빛으로 나와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 빛을 흡수해야 한다.

파도 속에서 들려온 음성

사도행전 27:1-44
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23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륙인이러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 
42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설교요약>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이탈리아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되었고, 후송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이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배에서 동역자와 함께 할 수 있게 자유를 허락해 준다. 가이사랴를 출발한 배는 무라에 정착을 하고, 탑승자들은 무역선인 알렉산드리아 배로 환승을 한 후, 그 배는 다시 니도를 거쳐 그레데 섬 남쪽에 있는 미항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 심한 기상 상황으로 인해 바울은 항해를 중단할 것을 권면했지만,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은 백부장은 항해를 강행한다. 물론 전문가의 견해에 더욱 신뢰를 가진 것도 있겠지만, 배에 실은 곡물을 조속히 운송해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이유도 백부장의 결정에 기여를 하지 않았나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허리케인의 여파로 배의 짐을 모두 바다에 던져 버리고, 모든 이들이 삶을 포기하는 시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그 때 바울은 하나님께 들은 네 가지를 담대하게 선포하는데, 첫 째는 배만 잃게 될 것이고, 둘 째는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 셋 째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바울에게 맡겨주셨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이 한 섬에 무사히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주목할 점은 바울을 제외한 배 안에 모든 사람이 살기를 포기한 그 날 밤 바로 그 때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것을 담대히 선포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과 그렇지 못했던 나머지는 어떻게 달리 반응했는 지 그 차이를 비교해 보자.

첫 번째, 배가 풍랑에 표류하자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려고 구명 보트를 띄워 도주하려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모든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 수 있기에 바울은 이를 백부장에게 알려 그들의 도피를 막았다. 이렇듯 우리 삶 속에 파도와 고난이 우릴 연단시키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릴 더 탐욕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삶의 파도가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파도 속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 14일 이라는 기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나름 정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수들이 도망을 쳐 본인들이 난처하게 될 상황을 두려워한 병사들은 죄수들을 살륙하고자 하는 무정함과 냉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에, 바울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며 마음이 녹아져 내린 백부장은 병사들을 저지하고 모든 이들이 다 살 수 있도록 진두지휘한다. 즉, 관계를 맺는데 있어 함께한 세월보다 그 관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품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어떻게 끝까지 사랑하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의 능력 아래에 두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 능력 아래 두신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폭풍 속에서도 내 마음이 잔잔해지고 평안해진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과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셨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심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내가 속한 곳은 유한하기에 지금 속한 곳에서 더 사랑하고 더 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는 삶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한 주 동안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묵상하고, 적용해보자.

불의한 사람들에 둘러싸였을 때

사도행전 25:1-12, 26:32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설교요약>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집요한 영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 더 헌신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향력이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삶에서 불의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불의한 사람들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며, 약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의한 상사나 동료나 무리들을 만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반응
첫째. 하나님의 빛과 진리가 앞서 가도록 기도하며 살아라
시편 43장 기자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결정보다 주님의 빛과 진리를 먼저 보내달라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 먼저 간구하면 주님께서 자신의 상황을 억울하게 하는 거짓과 어둠이 드러날 빛과 진리를 보내주시리라 믿었다. 하나님께서 빛과 진리를 보내주시면, 그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슬픔과 절망은 기쁨과 평안으로 바뀐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으로 빛과 진리를 보내실 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바울도 빛과 진리에 권세와 힘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항상 정직하며, 거짓 없이 빛 가운데서 말하고 행동했다. 빛과 소금 같은 삶은 언어와 연결되어 있다. 진실과 거룩, 정직의 말들은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바꾸어 간다. 말과 소금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은혜의 대화를 위해 ‘seasoned with salt’ 를 하라고 한다. 그 이유는 첫째, 고기를 맛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시즌닝은 먹는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한다. 즉 대화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할 때 시즌닝이 된다. 그런 시즌닝이 있는 대화는 지치고 피곤하고 기진맥진한 사람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둘째는, 말에는 균형과 절제가 있어야 한다. 서로 너무 좋다고, 너무 많이 말을 하거나, 혹은 경계하면서 너무 적게 하면 대화의 진실을 잃을 수 있다. 셋째는 균형 잡힌 시즌닝은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영감과 지혜를 준다. 그래서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라고 말씀했다. 시즌닝 대화는 계속해서 대화 중에 성령의 기름 부음과 인도를 받게 한다. 우리가 불의한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도 또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시즌닝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빛과 진리가 어둠을 몰아내고 영혼들을 풀어주는 소금과 빛의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자기 자신과도 시즌닝 대화를 해야 한다. 정직하게 빛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고백하는 기도를 할 때 어둠과 거짓은 힘을 잃는다. 내면은 고요하고 평안해 진다. 소금으로 빛으로 살수 있는 능력을 준다. 당신의 삶에서 빛과 진리가 당신보다 앞서가도록 기도하고 있는가?

둘째. 불의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응답할 수 있음을 기대하라
베스도는 가이사로 보내달라는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로마를 간다는 것은 그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2년이 지난 후에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 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11). 바울이 법정에 서서 재판 받는 모습이 계속 반복되는 23-26장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재미없는 부분 같지만 이것은 바울을 위해 하나님이 만들어준 무대였다. 구금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지도자와 로마의 최고 권력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셨다. 때때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상황들을 불평하고 그 의미를 모르고 답답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종종 있다. 또한 그 동안 함께했던 동료들과 삶을 나눌 때에도 어려움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무엇을 믿고 어떤 삶들을 살았는지 나눌 기회도 주신다. 또한 때가 되면 하나님은 힘들게 하는 권력자들이나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이끄시고 옮기신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게 하신다. 길을 여시고 그분의 빛과 진리가 앞서가게 하신다.

이사야 41장 17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목이 마르고 혀가 마르는 자들에게 응답하신다. 당신은 하나님을 이렇게 목말라 하는가? 바울은 하나님이 2년1개월 전에 하신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재치 있게 가이사에게 재판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해 사모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사모함이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이다.

 

믿음과 공감의 차이

사도행전 24:1-27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8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지 열 이틀 밖에 못되었고 12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 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설교요약>

오늘도 하나님께 나가긴 하지만 마음 문을 두드리는 주님께 삶을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론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깊숙이 만지시려 할때 벨릭스처럼 '그만하면 되었으니 가시오' 라며 발을 빼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 자원하며 나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 하실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윌리암 홀맨 헌트(1827~1910) 라는 영국화가가 1853년에 완성한 ' 세상의 빛' 이란 작품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수님의 표정이 어둡고 예수님이 들고 계신 등불에서만 빛이 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왜 문에 손잡이가 없는가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에 화가는 '마음의 문은 그 자신이 안에서 열어야만 한다는 걸 표현한 것이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잘 보면 문 앞에 엉겅퀴가 잔뜩 자라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연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영혼은 냉냉해졌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해졌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뜨겁든지 차든지 열정을 다시 회복하라고 하셨다. 그렇치 않으면 그들을 토해 버리시겠다고 하셨
다. 작가 윌리엄 홀맨 헌트는 이 그림을 통하여 믿는 사람의 영혼도 다시 닫힐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마음에 엉겅퀴가 자라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또한 밖에서 열수 있는 손잡이를 그리지 않음으로 안에서만 그 문을 열 수 있음을 표현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30) 라고 말씀하셨다.

열린 마음문의 특징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고 받아 들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원해서 들으면서도 벨릭스나 드루실라처럼 터치는 되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공감은 하는데 믿지는 못하는 것이다. 종종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공감' 과 '믿음'을 혼동할 때가 있다. 믿음은 말씀을 받을때 이성과 감정의 동의 속에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믿음은 물리적이고 감성적인 것을 초월해 어떤 불가능한 것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도 하나님을 믿기에 아멘하며 마음문을 열게 된다. 믿음은 사물이 아니라 인격이신 하나님을 믿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어떤 불가능하고 막막한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잃지 않는다. 공감과 이성을 뛰어넘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감정을 넘어 사실을 신뢰한다. 우리는 사실을 의지하지 않고 감정을 신뢰할 때 요동함이 있다. 당신이 예민해 하는 감정은 무
엇인가?
돈, 명예, 좋은 직장, 성공, 보여주는 것, 원수들의 엿봄, 이성, 결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집착, 외모, 신발, 자동차, 옷, 보석, 지식, 비교 받는 것, 당신의 어떤 재능, 취미생활..등 이 중에 특별히 예민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놔둘때 하나님과 당신의 교제는 점점 멀어지고 당신은 더 곤고해 질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사실로 돌아가야 한다. 다윗은 감정의 고백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의 사실을 알았다. 다윗의 시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글을 쓴 증거다. 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적어 보는것이 중요하다. 사실을 신뢰하라. 주님의 당신을 향한 사랑은 영원하며, 구원은 변함없고, 그분의 선하심은 영원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감정의 상자에 갇혀 실제를 보지 못하고 슬픔과 근심 속에 살아가는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데려가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보내신 그의 최고의 선물이고 실제인 비둘기는 '성경과 성령' 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감하는데 그치는가? 아니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가? 만약 믿어지면 당신은 감정과 이성의 상자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다.

나누어야 할 고통

사도행전 23:14-35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설교요약>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계획했던 바울의 암살이 바울의 생질을 통해서 알게 되고 바울은 바로 백부장과 천부장을 통해서 총독이 있던 가이사랴로 안전하게 호송된다. 놀라운 것은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서 군인 470명이 호위하게 된다.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오늘도 이렇게 지키신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어려움과 방해가 닥쳐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23장 5절에 보면 주님은 특별히 원수가 우리를 삼키려 하고 공격하려 할때 우리에게 기름 부으시는분 이시다. 즉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며 기름부음을 통해서 원수를 분별하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제공하신다. 다시 말해서 기름부음은 나를 노리는 원수를 보고 두려워하는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 성령을 부어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을 보게 한다.

바울이 높은 위치에 있던 백부장을 부를때 그가 즉시 달려온것으로 추측해 보면 그가 처한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권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도행전 23 장6절에 바울의 암살계획을 알려준 생질은 본인의 목숨을 걸고 바울에게 이 모든 과정들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주를 위해 살때 그때그때마다 충성되고 신실한 사람들을 일으켜 우리를 돕게 하신다. 그때 우리는 바울처럼 그런 사람들의 도움과 충성스러움을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로마서 8장 17절에 share란 단어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가진 좋은것과 귀한것을 나누는것과 또한 힘들고 무거운 짐도 함께 나누는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나눔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다시 쓸 수 있다. 기쁨도 나눌 수 있고 고통도 나눌 수 있다. 공통점은 사랑이있어야만 가능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고통' 을 나누는 자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2천년 전에 고통을 모두 받으시고 끝내셨다. 바울이 이 글을 쓸때는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5년이 지난 시기인데도 바울은 예수님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그분의 자녀가 그 고통을 나누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럼 이미 십자가에서 고통을 끝낸 예수님의 고통은 무엇일까?

천부장에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암살계획을 알린 청년은 '예수님의 고통'을 나눈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눌 사람을 찾고 계신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영광' 을 나누는데 관심이 있다. 칭찬받고 주목받고 대접하는일은 기꺼히 자신도 끼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는데는 인기가 없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는 눈에 띄지 않는 이 시대의 예수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들의고통이 나누어 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기꺼이 나누어 주신다. 당신이 나누어 져야할 예수님의 고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복을 채우는 사람들

시편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설교요약>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현재 상황들이 복인지 화인지 구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들이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예로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로 되지만 그는 후에 이집트에 총리가 되는 대 반전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복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화가 되고, 화로 여겨지는 일들이 복이 된다면 과연 무엇이 진정한 복 일 수 있을까? 

진정한 복은 시간과 상황에 상관 없이 항상 이루어 지는 복이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진정한 복은 예수님 이시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즉 선으로 이뤄진 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다 복이 있는 자들인데 왜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삶들이 아름다운 결론 임을 담대히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은 감정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결코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성을 나타내는 악한 감정들을 거부하기 위해서 좋은 감정까지 없애 버리는 속임에 빠지면 안된다.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은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감정의 회복 없이는 복된 삶을 누리지 못한다. 

1절에 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냇가에 나무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악인들의 삶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먼저, 오만한 자들은 바로 교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겉으로 겸손해 보이고 말투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들에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자가 교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죄인들의 길에 서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두가지 속성은 쉽게 분별할 수 있지만 악인의 꾀를 따르는 사람은 구별하기 힘들다. 꾀를 부리는 것이 세상적으로 볼 때 지혜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꾀를 부리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본인의 유익과 기쁨이지 하나님의 빛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 20절에 보면 악인들은 그의 행위가 드러날 까봐 빛을 미워한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지만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은 부분에서 꾀를 부리며 이윤들을 챙겼던 위선자들이었다. 혹시 우리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악인의 꾀를 따르는 삶이 아닌 것인지 확인 볼 필요가 있다. 

2절에 보면 ‘묵상하다” 라는 단어에는 선포하다, 주장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한 단어에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묵상은 혼자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선포는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 내는 것이다. 또한 ‘주야로” 는 하루 종일을 의미하는데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면을 채우고 그것이 내 말과 행동으로 삶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이 바로 복이 있는 사람이다. 

복이 있는 사람은 단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나무 잎이 마르지 않고 늘 푸른 사람이다. 또한 복을 꽃 피우고 그 향기를 뿜어내고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에 예수님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생각

 

사도행전 22:24-23:13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쌔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설교 요약>

• 고난의 한 복판에서 다른 계획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울은 유대인의 공회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고 다시 감금되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바울에게 너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들을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의 성품들이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은 그분을 거부하고 받아 드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둘째는 하나님은 바울의 미래를 계획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우리들의 삶을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 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심을 믿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면 의, 식, 주 를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한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사랑으로 한다
바울은 공회에서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지만 그 결과 누군가 믿었다는 사람은 없고 반대로 본인을 죽이겠다고 하는 40명의 무리와 그 당시 부활과 천사를 믿지 못한 사두개인들과 그것을 믿었던 바리새인과의 분쟁만 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너가 오늘 했던 증언을 로마에서도 할거라는 말씀만 하셨다. 바울은 단지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했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한 것이다. 또한 주님은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사용 하신다. 당신은 성실하게 주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는가? 우리는 요셉과 게하시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위 상황도 중요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을 증명해 준다. 두가지 마음의 싸움이 치열하게 우리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생각들이다.

• 두 마음의 싸움
바울은 자신의 내면에서 두가지 싸움을 발견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자신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다. 로마서 7장 18-19절에 보면 마음의 법, 즉 하나님이 주신 계명인데 죄는 사랑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먼저 “생각” 부터 공격한다. 이 죄의 법이 나의 몸을 결박하여 죄수로 만들기 원한다. 그럼 이런 두 마음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수 있는가? 바울은 이 두 마음의 싸움 속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 이기는 열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있는 마음도 주신다. 따라서 영적 전쟁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서 7장 25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자유케 되었어도 다시 죄의 법의 공격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믿은 후에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분의 선한 일 을 하고자 하는 갈망을 없애려는 공격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싸움에 이길수 있는 방법을 로마서 8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 성령을 따라 살아라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성령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고 말씀한다. 즉 성령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사단의 정죄로 부터 자유하다. 하지만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계속해서 정죄감을 심어 주고 결국에 죄에 넘어지게 한다. 하지만 성령충만함으로 이런 음성을 듣게 되면 “너는 존귀하다. 너는 이미 죄의용서함을받았다” 라는 음성으로 듣게된다. 여기서 누군가는 죄를 짖고 정죄감이 없으면 어떻게 회개하겠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 성경말씀 밖에 없다
육신의 생각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지만 이길수 있는 것은 성령의 생각 뿐이다. 성령의 생각을 위해서는 불을 붙이는 기름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성경 말씀이다. 
시편 103장 4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과 권세는 사랑과 긍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내면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상급이고 하나님이 주신 권세이다. 이러한 말씀의 기름을 통해 부어진 생각들은 더욱 성령께 붙들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줄 것이고 그 결과는 더 풍성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사도행전 21:37-22:23
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설교요약>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생명을 철저히 그 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으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고나 병이나 어떤 일로인해 일찍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신 것인가? 라고 질문할수 있다. 그래서 '그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요점은 육체적인 생명이 살았는가? 죽었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는가? 혹은 그 임재안에서 죽어갔는가? 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든 살든, 고난을 격든 형통의 일을 경험하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마지막 목적지는 소망이다. 이 소망은 하나님이 마 음에 주시는 어떤 희망이고 꿈이다. 환란에서 이 희망까지 오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감싸시고 있는 사랑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려 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23년동안 세월이 그가 예수님을 모르던 세월 과 너무나도 다른것을 직접체험 했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을 전해 주었을때 그 이름의 권세가 귀신들린  종을 자유케 했음을 보았다. 빌립보 감옥의 자신들을 때리던 간수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어떻게 기뻐하고 자유했는지를 보았다. 루디아가 어떻게 헌신하게 되었고 루스드라의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된 것을 보았고 어떻게 고린도와 에베소의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곳에 천국이 임했는지를 보았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바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과 평안의 폭포같은 은혜로 인해 감옥속에서도 천국을 살았다. 이 안에 '기쁨, 관용(gentleness), 평안, 기도, 감사' 가 모두 들어있다. 특히 그가 누린 '평안' 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NIV 에서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안' 이라고 번역했다.

우리는 사고와 이해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물과 상황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시각과 이해로 불안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면 무엇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가 있다. 많은 경우 이 관점 때문에 미움, 거절, 관계끊음, 불안, 걱정 등의 감정이 증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가 기도할때 이런 관점들을 부수고 교정하고 분별케 해준다. 우리의 둔하고 어리석은 죄된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 기쁨, 소망 잠잠히 기다림, 낮은 마음등으로 채우신다. 이런 평안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필요와 감정들을 기도로 맡기며 아뢸때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좁은 이해와 생각을 초월하는 능력을 부어주신다. 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나의 갖혀있고 왜곡된 생 각들을 알게 해줌으로 넓은 시야 하나님의 초월적인 관점으로 인도하신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자신이 죽어도 천국에 갈수있다고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이땅에서도 그 예수님을 굳게 믿기에 어떤 고통속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다음 세상에서의 천국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땅에서도 확신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분이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열쇠가 된다는 확신이 없기에 이땅에서도 내 삶의 모든 문제의 열쇠가 된다고 믿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 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조그마한 미묘한 우리 내면의 불안과 근심에도 세심하게 신경쓰시고 안심 시키시고 평안을 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모든것이 되어 야 한다고 그의 간증속에서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환란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소망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수있다. 첫째는 이미 이루어진 소망. 둘째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소망. 예수님 만나기 전의 우리가 가졌던 소망과 예수님을 만난후에 가졌던 소망을 비교해 보라.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날것이다. 세번째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형 소망이 있다. 미래의 소망에 대해 자신이 없어질때가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는 모두 사랑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은 이미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 이 모든 축복들이 있다.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이 있 다.고난이하늘의소망이된다.그하나님이 주신 소망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묵고있던 지옥의 권세가 풀어지고 자유케 되며 이땅에서 천국의 평안을 누리며 살게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며 사는 사람들은 그 임재를 담고있는 예수님을 주고 싶어한다.

그럼 어떻게 이 천국을 담고있는 임재가 더욱 우리삶에 깊어질까? 사랑을 사용할때 그분의 임재가 더욱 깊어진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주셨기 때문입니다'(롬:5:5/새번역) 이 말씀에 의하면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이 없다고 두려워한다. 중요한것은 그 사랑을 사용하는것 이다. 그 사랑을 사용하면 할수록 그 사랑은 성령을 통해 계속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길 원하는가? 그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행동으로 나누어 주라. 그 사랑을 다 나눠주어 기진맥진해 갈때 성령은 다시 그 사랑을 우리의 영혼속에 더 크게 부어 주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