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채우는 사람들

시편 1: 1- 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성령의 생각

 

사도행전 22:24-23:13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쌔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설교 요약>

• 고난의 한 복판에서 다른 계획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울은 유대인의 공회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고 다시 감금되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바울에게 너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들을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의 성품들이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은 그분을 거부하고 받아 드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둘째는 하나님은 바울의 미래를 계획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우리들의 삶을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 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심을 믿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면 의, 식, 주 를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한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사랑으로 한다
바울은 공회에서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지만 그 결과 누군가 믿었다는 사람은 없고 반대로 본인을 죽이겠다고 하는 40명의 무리와 그 당시 부활과 천사를 믿지 못한 사두개인들과 그것을 믿었던 바리새인과의 분쟁만 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너가 오늘 했던 증언을 로마에서도 할거라는 말씀만 하셨다. 바울은 단지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했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한 것이다. 또한 주님은 결과를 주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사용 하신다. 당신은 성실하게 주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는가? 우리는 요셉과 게하시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위 상황도 중요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을 증명해 준다. 두가지 마음의 싸움이 치열하게 우리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생각들이다.

• 두 마음의 싸움
바울은 자신의 내면에서 두가지 싸움을 발견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자신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다. 로마서 7장 18-19절에 보면 마음의 법, 즉 하나님이 주신 계명인데 죄는 사랑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먼저 “생각” 부터 공격한다. 이 죄의 법이 나의 몸을 결박하여 죄수로 만들기 원한다. 그럼 이런 두 마음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수 있는가? 바울은 이 두 마음의 싸움 속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 이기는 열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있는 마음도 주신다. 따라서 영적 전쟁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서 7장 25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자유케 되었어도 다시 죄의 법의 공격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믿은 후에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분의 선한 일 을 하고자 하는 갈망을 없애려는 공격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싸움에 이길수 있는 방법을 로마서 8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 성령을 따라 살아라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성령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고 말씀한다. 즉 성령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사단의 정죄로 부터 자유하다. 하지만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계속해서 정죄감을 심어 주고 결국에 죄에 넘어지게 한다. 하지만 성령충만함으로 이런 음성을 듣게 되면 “너는 존귀하다. 너는 이미 죄의용서함을받았다” 라는 음성으로 듣게된다. 여기서 누군가는 죄를 짖고 정죄감이 없으면 어떻게 회개하겠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 성경말씀 밖에 없다
육신의 생각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지만 이길수 있는 것은 성령의 생각 뿐이다. 성령의 생각을 위해서는 불을 붙이는 기름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성경 말씀이다. 
시편 103장 4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과 권세는 사랑과 긍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내면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상급이고 하나님이 주신 권세이다. 이러한 말씀의 기름을 통해 부어진 생각들은 더욱 성령께 붙들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줄 것이고 그 결과는 더 풍성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사도행전 21:37-22:23
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설교요약>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생명을 철저히 그 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으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고나 병이나 어떤 일로인해 일찍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신 것인가? 라고 질문할수 있다. 그래서 '그분의 임재로' 감싸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요점은 육체적인 생명이 살았는가? 죽었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는가? 혹은 그 임재안에서 죽어갔는가? 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든 살든, 고난을 격든 형통의 일을 경험하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마지막 목적지는 소망이다. 이 소망은 하나님이 마 음에 주시는 어떤 희망이고 꿈이다. 환란에서 이 희망까지 오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감싸시고 있는 사랑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려 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23년동안 세월이 그가 예수님을 모르던 세월 과 너무나도 다른것을 직접체험 했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을 전해 주었을때 그 이름의 권세가 귀신들린  종을 자유케 했음을 보았다. 빌립보 감옥의 자신들을 때리던 간수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어떻게 기뻐하고 자유했는지를 보았다. 루디아가 어떻게 헌신하게 되었고 루스드라의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된 것을 보았고 어떻게 고린도와 에베소의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곳에 천국이 임했는지를 보았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바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과 평안의 폭포같은 은혜로 인해 감옥속에서도 천국을 살았다. 이 안에 '기쁨, 관용(gentleness), 평안, 기도, 감사' 가 모두 들어있다. 특히 그가 누린 '평안' 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NIV 에서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안' 이라고 번역했다.

우리는 사고와 이해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물과 상황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시각과 이해로 불안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면 무엇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가 있다. 많은 경우 이 관점 때문에 미움, 거절, 관계끊음, 불안, 걱정 등의 감정이 증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가 기도할때 이런 관점들을 부수고 교정하고 분별케 해준다. 우리의 둔하고 어리석은 죄된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 기쁨, 소망 잠잠히 기다림, 낮은 마음등으로 채우신다. 이런 평안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필요와 감정들을 기도로 맡기며 아뢸때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좁은 이해와 생각을 초월하는 능력을 부어주신다. 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나의 갖혀있고 왜곡된 생 각들을 알게 해줌으로 넓은 시야 하나님의 초월적인 관점으로 인도하신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자신이 죽어도 천국에 갈수있다고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이땅에서도 그 예수님을 굳게 믿기에 어떤 고통속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다음 세상에서의 천국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땅에서도 확신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분이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열쇠가 된다는 확신이 없기에 이땅에서도 내 삶의 모든 문제의 열쇠가 된다고 믿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 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조그마한 미묘한 우리 내면의 불안과 근심에도 세심하게 신경쓰시고 안심 시키시고 평안을 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모든것이 되어 야 한다고 그의 간증속에서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환란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소망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수있다. 첫째는 이미 이루어진 소망. 둘째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소망. 예수님 만나기 전의 우리가 가졌던 소망과 예수님을 만난후에 가졌던 소망을 비교해 보라.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날것이다. 세번째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형 소망이 있다. 미래의 소망에 대해 자신이 없어질때가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는 모두 사랑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은 이미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 이 모든 축복들이 있다.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이 있 다.고난이하늘의소망이된다.그하나님이 주신 소망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묵고있던 지옥의 권세가 풀어지고 자유케 되며 이땅에서 천국의 평안을 누리며 살게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며 사는 사람들은 그 임재를 담고있는 예수님을 주고 싶어한다.

그럼 어떻게 이 천국을 담고있는 임재가 더욱 우리삶에 깊어질까? 사랑을 사용할때 그분의 임재가 더욱 깊어진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주셨기 때문입니다'(롬:5:5/새번역) 이 말씀에 의하면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이 없다고 두려워한다. 중요한것은 그 사랑을 사용하는것 이다. 그 사랑을 사용하면 할수록 그 사랑은 성령을 통해 계속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길 원하는가? 그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행동으로 나누어 주라. 그 사랑을 다 나눠주어 기진맥진해 갈때 성령은 다시 그 사랑을 우리의 영혼속에 더 크게 부어 주실것이다. 

따로 떼어 놓은 은혜

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설교요약>
이번 2018년 몽골 선교팀은 총 15명 이었다. 몽골팀 3명 (오랑거, 오농, 만두호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4명 (김선재, 서성원, 구나미, 홍평안), 한국에 있는 MMC 가족 3명 (박재성, 서가영, 박성진) 그리고 뉴욕에서 온 3명 (김정영, 장복근, 서난경), 3개의 나라에 흩어져 있는 총 15명을 따로 떼어 모으셨다. 몽골 울란바토르와 에데르네트(Erdenet)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울란바토르에서 순교하신 한국 목사님이 세운 한 몽골 교회에서 이틀간 찬양 집회를 했다. 몽골의 청년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둘째날은 더 많이 모였다. 매 시간마다 성령을 부어 주셨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따로 떼어 놓은 시간과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후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영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 성령이 하게 하시는 일이다. 울란바토르의 고아원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 팀이 만나게 하시려 따로 떼어 놓은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찬양 모임에 이틀 동안 참석해 맨 앞자리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며 예배했다. 우리팀들은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팀원 중에 MIU 교수로 섬기던 형제가 에르데네트로 향하던 밤 기차에서 은혜스런 나눔을 해주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권유로 중 2때부터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전도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팀들은 일을 못하면 정죄를 받았고 긴장감이 있었으며 서로 미워하는 일들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팀은 일을 실수해도 서로 격려하고 사랑했으며, 일 중심이 아닌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그리던 그런 공동체였으며, 이들을 통해 내면에 하나님의 풀어주심과 채워주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기에 우린 예수님처럼 살게 된다.

2. 하나님이 주신 새 옷을 입게 하심으로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이미 열매를 맺고 구원을 받았고 믿음의 소문과 영향력을 흘려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계속 새로운 옷을 입으라고 말씀한다. 새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자신을 계속 renew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새 옷을 입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려는 그리스도인의 본능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본능의 옷을 선물로 주셨다. 그옷을 입고 안입고는 우리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이 주신 옷은 항상 새것이다. 이 옷을 입으면 닳지도 쇠하지도 않고 계속 아름답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성품으로 유지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과 소망과 순결의 성품은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죄성은 이러한 아름다운 성품들을 변질 시키고 하나님의 옷을 멀리하게 한다. 옷을 입을지 않을지는 우리의 의지의 결정이 뒤따른다. 오늘 당신이 생각하고 입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의 옷은 무엇일까? 선교여행을 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천국을 경험한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은혜와 기쁨을 팀원이 나누어 주었지만, 동시에 우린 이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죄성과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모습을보게된다.마지막날 아침 큐티를 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죄와 약함을 솔직히 나누었다. 이런 깨달음은 우릴 더욱 하나님의 성품의 옷을 입도록 인도해 준다. 하나님이 당신을 깨끗케 하려고 잘라내고 있는 성품과 습관, 관계들은 무엇인가? 만약 이런 일들의 우리의 삶에서 일어 나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릴 따로 준비 시키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3. 희망이 아닌 믿음으로 살게 하심으로
사람은 자신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 갈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믿음만이 이 불가능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만약 자신이 그냥 소망한 일들이 쉽게 이루어 지면 소망이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냥 소망에서 멈추게 된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소망은 대상이 필요 없다. 하지만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소망에서 믿음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소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전혀 접촉이 없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과 대화하게 하고 그 대화 속에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한다. 또한 그분의 평안과 기쁨과 사랑이 우리의 영혼에 흘러오게 된다. 사람들은 믿음이 강해지길 원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주목하면 믿음은 자동으로 성장한다. 아무리 믿음을 강하게 하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약해지고 불가능 해진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감사하며 하나님을 추적하라. 그분의 약속을 추적하라.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가복음 8:4-18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네가지 밭의 비유
오늘 본문의 “네가지 밭의 비유” 중 씨가 뿌려진 첫번째 밭은 길가였다. 사람과 동물의 왕래가 많은 길가의 씨앗은 심기기도 전에 밟히거나 먹혀 사라진다. 첫번째 밭인 길가는 생각이 분주해 들은 말씀이 흩어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두번째 밭은 바위다. 바위 위에 얇은 흙에 있던 탓에 씨앗은 순간 싹은 돋았으나 수분이 없어 금새 말라 죽는다. 이 역시 말씀이 전해진 듯 하나 심기지 못하고 생명 또한 없음을 나타낸다. 세번째는 조금 특이하다. 땅에 잘 심겼으나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 햇빛과 양분을 뺏겨 열매를 못맺게 된 밭이다. 말씀이 안에 있으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세상 향락으로 열매 맺지 못한 사람들을 뜻한다. 마지막 밭은 ‘좋은 밭’, 즉 말씀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비유하신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모두에 등장하는 이 비유가 담긴 본문 10절에서 예수님은 또다른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비유는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단순 명료하지만, 숨겨진 진짜 메세지가 있어 누구나 깨닫는 건 아니라고 하신다. 즉, 본문에서처럼 그 뜻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그 비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 듯, 비유로 된 주님의 말씀을 진실로 묻는자들에겐 그 뜻이 가리워지지 않으나, 헛투로 듣는 자에겐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등경의 비유
‘네가지 밭의 비유’ 뒤로 이어지는 ‘등경의 비유’ 에는 또다른 메세지가 담겨 있다. 본문이 거의 흡사한 마태복음 5장의 ‘동경의 비유’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들에게 본이 될 우리의 적극적 착한 행동을 강조한 마태복음과 달리, 있다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빛의 특징이 누가복음에서는 드러난다. 두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듣는 자들의 태도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그리고 말씀에 대한 태도로 사람을 네 부류로 나누신 것과, ‘빛이 있어서 빛이 나타나는 자와 빛이 없는 자’. 즉, 빛의 특징을 닮은 것으로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신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유들에 담긴 메세지들은 결론적으로  가시밭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이 부류의 사람들은 열매는 없지만, 생명은 있다고 생각했는데…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라 경고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삶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자신의 삶도 바꾸지 못하는 진짜 빛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진정한 빛이 있느냐? 

비유에 담긴 경고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은 모두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네 가지 밭으로 대변되는 네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우리 중에 없길 바라지만,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생각들로 가득차서 말씀은 밟혀 버리거나 먹혀버리는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스스로도 속고 있을 수 있어 가장 위험한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도 교회 안에 있다. 본문의 비유에 따르면, 이 분들은 예배 속에서 찬양할 때 누구보다 큰 감격을 경험하고, 말씀을 들을 때 큰 행복, 기쁨으로 받는, 누구보다 ‘좋은 밭’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당을 떠나 조금만 지나면 그 싹은 말라버리고, 바로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말씀을 듣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큰 갈등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 외에 세상 사람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왜 그럴까? 그들은 아직 세상에 속해 있고,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세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 역시 교회 안에 있다. 제가 생각할 때 좋은 밭에 속한 분들도 일시적인 기간 동안, 이 세번째 밭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연인이 생기고, 돈이 생기고 뭔가 바라던 좋은 일들이 일어나서 그 유혹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말씀이 삶에서 전혀 열매 맺지 못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이제 믿기 시작한 분들도 믿음과 삶의 불일치를 한동안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수개월 동안 그 상태가 지속되면, 과연 그 안에 빛이 있을까? 생명이 있는가? 의심해 봐야 한다. 참 빛은 결코 가려지지 않고, 결국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세가지 밭에 속한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들이 아니다. 다른사람은 물론 우리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 이 세가지 밭에 속한 사람은 인정하든, 인정 하지 않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경고 속에 담긴 구원
그러나, 경고는 언제나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처럼 오늘 이 네가지 밭의 비유는 주님께서 교회에게 너희가 어디 있는지, 너희의 상태가 어떤지 깨달아라!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 영적인 눈을 뜨고 진리를 보아라! 그리고 돌이켜 좋은 밭이 되거라! 그러면 너희에게 안전을.. 그리고 백배의 열매의 선물들까지 줄 것이다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것은 복음이고, 간곡히 “돌아오라!”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외침이다. 네번째 밭의 비유처럼 좋은 밭이 된다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보 같이 듣는 여러분들을 통해 결국 세상도 감동을 받고, 우리가 뿜어내는 진정한 빛,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죄를 이기게 하는 사랑

예레미야 2:1-13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찌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설교요약>
예레미아 2:13 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음을 볼 수 있다.
첫째, 생수의 가치를 버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렸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랑해야 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주고, 보살펴야하는 영혼에게 평가를 내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주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내가 예배하고 섬겨야 할 곳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원망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것을 쫓아 우상에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과 비교했다.
하나님을 섬기며 우상을 함께 섬긴다면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하며 세상의 방식을 따르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어떤 가치와도 비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신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고민할 때, 우리 때문에 우리의 직장과 삶에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무감각하게 살았다.
우리가 당장 우리 눈 앞의 웅덩이에 집중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며 살아가다보면 생수이신 하나님이 필요 없어진다. 하나님을 찾는 감각이 무뎌진다. 하나님 말씀 없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없이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을 의지하게 되고, 세상의 가치만으로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하나님은,
1.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7절에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다’ 말씀처럼 이스라엘을 위해 특별히 공급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적셔 주신다
2.  변함 없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 2절 '청년의 때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변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셨다. 다윗과 엘리야 또한 광야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다. 우리 또한 광야와 같은 시간이,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신앙 최고조의 시간이다.

3. 하나님은 온전한 사랑을 주셨다 – 3절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하셨다. 유다 백성을 첫 열매로 전세계에 선포하시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첫 열매로 여기셨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다. 이스라엘을 공격을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기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우리는 거룩하게 살도록 해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림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된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허망한 것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를 통해 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너와 함께한 신혼의 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말하신다. 웅덩이를 판 우리가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가 잊어버린 소중한 첫사랑을 다시 고백하며 하나님보다 더 가치를 두고 살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직 그분 앞에 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의 죄악이 떠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첫 열매다. 우리 죄를 숨기고 죄를 만해 하려고 또 다른 웅덩이를 파고 있는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신다. 하나님을 향한 봉사와 헌신이 웅덩이가 되지 않게 하자.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는 그분께 돌아가자. 광야에서 배운 그 첫사랑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신혼의 사랑을 들고 주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의 기쁨

시편 147:11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설교요약>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시편 147:11)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변하지 않으시기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을 바라는 자들을 책임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
'주님이 이 땅에 명령만 내리시면 그 말씀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양털 같은 눈을 내리시며 재를 뿌리듯 서리도 내리시며, 빵 부스러기 같이 우박을 쏟으시는데 누가 감히 그 추위 앞에 버티어 설수 있겠느냐?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니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른다'(시편 147:15-18) 보면 하나님의 말씀엔 능력이 있다. 즉 말씀이 온 창조물과 사람의 마음을 얼어 붙게도 하시고 녹이기도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군가에 게는 더욱 마음을 강퍅하게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물처럼 녹게 해서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야고보서 1장 6절에 보면 당신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야고보의 의심과 파도의 비유를 통해 묵상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 쓰러질 수 있다. 즉 의심하지 않고 구하고 믿는 기도는 하나님을 누리고 풀어지고 자유를 주고 기쁨을 주고 축복을 가져다 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에서 방황할 때 만난 나발은 악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악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왕비였던 에스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에 만족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까지 나아갔고 그 결과로 고난에 빠진 유대인들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를 기뻐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겸비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찢어진 날개

시편 143:8
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설교요약>
'내가 주님을 의지하니 아침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 의지하니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시오' (시: 143:8) 다윗이 매일 아침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되새겨 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 하는 것 을 어떻게 보여 주시는가?

날게 하시는 하나님
'날아가거나'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하늘에 나는 새도 하나님 의 뜻이 아니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늘을 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임을 알게 해준다. 레위기 1:17에 보면 하나님은 짐승을 불살라 드리는 번제 중에 비둘기를 드릴 때 날개를 찢되 아주 몸에서 분리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찢으지고 다시 그분의 사랑으로 꿰매셔서 날개를 펴서 넓은 창공을 날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에 꿈꾸었던 일들이 찢어질 때 다시 꿰매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날개를 펴서 날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한다.

찢어진 날개를 다시 꿰매시는 방법
누가복음 2장 34-35절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 중에는 예수님께서 하시게 될 3가지 사역의 특징이 들어있다. 3가지 사역을 통해 그분의 자녀들의 찢어진 날개를 꿰매어 다시 날개 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들어있다.

첫째. 많은 사람을 파괴 시키고 일어서게도 하시는 사역이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소유가 그리워서 였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죄를 회개하려고 한것은 그분의 소유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배고픈 처지때문임을 알게 해준다. 그렇기에 그가 집에 돌아와서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하게 아버지에게 굴복한다해도 내면의 거짓의 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아들의 내면의 거짓된 벽을 허물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이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알 면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도와주시고 다시 죄의 냄새로 쩔은 나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야 한다. 이때 찢어진 날개는 다시 창공을 향해 펼쳐지며 그분이 인도하신 길로 날아갈 것이다.

둘째. 많은 사람의 비방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비방과 대적들도 많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찢어진 날개를 다시 꿰매 다시 날게 하기 위해 주님을 위해 '비방 받는' 경험을 하게 하신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때마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미움 받음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미움을 받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미움을 받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미움 속에서 넓고 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된다. 이때가 찢어진 날개가 꿰매어 지는 시간이다.

셋째. 마리아의 심장(마음) 이 예수님 때문에 슬픔의 칼에 찔릴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 사람들의 내면 안에 있는 칼을 만난다. 슬픔의 칼, 분노의 칼, 미움의 칼, 시기의 칼, 증오의 칼, 정욕과 탐욕의 칼, 교만의 칼......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역 을 할 때 많은 칼에 찔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와 열매의 기쁨에 비교하면 그것은 모래 사장에 가끔 밟히는 조개 껍질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조개 껍질 때문에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고 누리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칼에 한번씩 찔릴 때 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날개를 더욱 크게 확장 시키신다. 더 높이 더 넓게 날게 하신다. 더 많은 열방의 영혼들을 품고 치유하고 사랑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두 팔은 비둘기 날개처럼 찢어져 십자가에 달렸다. 그러나 그 두 날개 안에서 많은 열방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옥의 삶이 천국이 되고 있다.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용서받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가지 예수님의 사역의 특성을 기꺼이 행할 사람을 찾고 있다. 그들의 찢어질 날개를 이 세가지 일을 통해 다시 꿰매 날게 하시고 싶어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빌립보서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설교요약>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사야 59:1)  태어 나면서 부터 죄는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과 단절 시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 열매를 먹게 하셨지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후에 뱀이 선악과 앞에선 하와를 향하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라고 물었을때 하와는 죄를 짓기 시작했다. 
 
첫째. 하와는 자신이 죄를 지을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꿨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와는'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3:3) 라고 대답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고 자신의 정욕을 합리화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것이다.
 
둘째. 하와의 죄는 하나님을 속이는 분으로 본것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뱀을 이용한 사단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이 같이 되기에 못먹게 했다는 말을 하와에게 했다. 사단은 하나님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성에 의혹을 불어 넣었다. 사단은 오늘도 이성적인 논리로 사람의 생각속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 선하지 않은분임을 주입시킨다. 이것에 넘어가는 것이 죄다. 
 
세번째. 하와의 죄는 하나님 같이 될려고 한것이다. 뱀은 선악과를 보며 갈등하는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라고 속삭였다. 오늘도 사람들은 선행, 성공, 희생, 권력,돈, 불가능에 도전, 업적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같이 추앙받고 싶어한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은 죄의 본성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드러난 죄보다 예수님 없는 자선과 희생과 모험과 도전과 업적속에서 더 많은 인간의 교만과 세련된 교활함과 우월감이 존재한다. 

네번째. 하와의 죄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그 나무를 보고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3:6) 성경은 행하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짖는 죄의 심각성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어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지 불순종 할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했고 그런 자유의지가 있었다.

하와의 4가지 죄 유형안에 우리가 짓는 모든 죄들이 다 들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만지고 이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다. 
 
누군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대의 삶을 사는것을 죄라고 하며 간섭하고 정죄하면 그것 또한 억압과 폭력이 아닌가?' '왜 아들 까지 보내 믿으라고 하면서 우릴 부담스럽게 하는가?' 라고 반문할수 있다. 이때 하나님은이렇게 물으신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 잘 살아야 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왜 그토록 불행한가?’ 예수님은 반석위에 집을 짓지 않은 사람은 모두 비바람의 불어닥칠때 모두 무너질것이라고 하셨다. 열매가 바뀌려면 나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포도열매를 원하면 가시나무는 먼저 포도나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내 삶의 뿌리로 놓지 않고 돈과 세상정욕과 자기자신과 사람과 성공과 자랑과 우월감을 뿌리로 기초로 놓으면 언젠가 포도열매가 아니라 가시가 열매로 맺힌다.

예수님이 사랑과 믿음이 당신의 가장 중요한 위치가 아니면 언제가 그 무너짐이 심할것이다. 한 순간에 그동안 쌓았던 모든것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의 그 말씀, 뿌리를 종자를 바꾸라는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당신의 모든것으로 두었다면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쳐 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무너진다 해도 하나님이 다시 순식간에 세워 주실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뿌리채 바뀐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삶의 홍수와 파도가 다가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욱 빨리 크게 열매를 맺고 향기를 세상에 드러내게 될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한다.  
 
나의 삶의 뿌리가 바뀐 구체적인 증거에 대해 성경은 '성숙' 이라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를 원하신다. 예수님 처럼 그 인격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예수님 처럼 살길 원하신다. 

내 안에서 자라가는 예수님의 인격 4가지 
첫째. 헛된 속임과 이기적인 야망의 마음으로 어떤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심과 허영이 없는 마음의 특징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겸손으로 나타난다. 
둘째. 나의 관심이 아닌 타인의 관심을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보셨다. 타인을 향한 관심은 보는것에서 시작된다. 
세째.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사람이 누군가를 섬기고 자신을 비우는 가장 첫번째 단추는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것이다. 예수님의 순종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증거한다. 종으로 섬기며 사는 것은 자존감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다. 그 자존감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다. 
네째. 일시적인 순종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 순종하신 인격이다. 예수님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자신이 원치 않으실 때도 순종하셨다. 순종이 두려워 질때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을 복종시키셨다. 

예수님 처럼 되라고 하신 이유 
바울은 이 예수님의 4가지 인격의 특성을 품고 예수님 처럼 살라고 하셨다. 그 목적은 첫째: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품을때 그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무릎꿇고 예배하는 일을 일으키시기 위함이다. 둘째: 하나님이 이런 일을 나를 통해 이루실때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당신이 오늘 이땅에 존재하는 이유다.

감추어진 보호

사도행전 21:1-36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설교요약>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위험과 환란이 기다린다는 성령의 증언들을 들었다. 그럼에도 주저함 없이 예루살렘으로 출발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의 북쪽 두로에 도착했다. 두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우상들의 근원지였고, 이스라엘 전역에 우상이 들어오게 했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를 가진 두로에 바울이 도착했음에도 그곳에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두로에 교회가 생긴 역사를 되짚어 보면, 21년전에 예수님에게 56km 의 거리를 걸어와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자신의 나라 두로 사람들에게 전해주었고 그 소식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보자 마자 준비되었다는 듯이 예수님께 나가 무릎 꿇고 큰 믿음으로 간구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로부터 약 28여년 후에 바울은 자신의 생애에 큰 환난을 앞둔 시기에 두로의 제자들로부터 위로와 따뜻한 환대를 받고 있었다.

특히 이 두로의 귀신들린 딸문제로 예수님께 나간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혹독한 대우를 받았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 라며 거절감을 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거절감 어린 말을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15:27) 예수님은 짧은 시간에 이 여인의 소원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믿음을 강하게 훈련 시키셨다. 하나님이 이 여인을 통해 주시는 음성은 하나님에게 거절감을 느끼는 상황을 맞이해도 사랑받고 있는 사람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말하며 산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이 오거나 반대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 되면 너무도 쉽게 그분의 나를 향한 사랑의 감각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것에 대해 기독교 작가 필립얀시가 지적한 톨스토이와 도스 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톨스토이는 온갖 규율과 말씀을 지키는 척 하지만 결국은 위선적인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해 가다 결국 부랑자로 죽었다고 하며,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음울한소설을 쓰고 술과 도박으로 건 강과 재산을 탕진했지만, 죄를 짓고 체포되어 죄수용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어느 여인을 통해 성경한권을 전해 받고 신약성경을 통독한다. 그는 감옥에서 인간을 악의 절정을 보게 되고 또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나게 된다.

바울은 두로 가이사랴를 거처 이스라엘에 도착하고 7일째가 되었을 때 그가 율법을 비방하고 성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돌로 쳐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은 천부장으로 군인들을 모아 현장으로 가게 해 바울을 지켜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전 여러번 그가 위험에 처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지만, 보호를 예비해두신 것은 미리 알려주시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그의 삶의 결단과 함께 미래의 축복을 말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주님을 따르는 시간이 오래되어 갈 때 주님은 고난(이삭 바침) 만 이야기 하고 이삭대신 양을 메 놓을 것이나 그 고난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그를 향한 축복은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시어머니를 따라나선 룻에게도 앞으로 있을 고난만 예견 되었지 그녀를 향한 보아스 와 영적인 축복들을 조금도 이야기 해주지 않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성품 중 하나다. 하나님은 때론 고난과 함께 축복도 말씀하시지만 때론 앞으로 겪게 될 고난만 말씀 하시고 보호와 축복은 감추시기도 한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의 사랑을 보고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 한 많은 말들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향한 사랑을 삶으로 행동으로 순종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향해 아무런 유익이나 번쩍거리는 찬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함께 있어주고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해 준적도 있지만 장차 있을 고난만 이야기 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사랑의 고백을 듣는 것뿐 만이 아니라 보고싶어 하셨다. 이것이 보호 와 축복을 감추신 이유다.

홀로 걸어야 하는 시간

사도행전 23:13-38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설교요약>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지않고 도보로 하루가 걸리는 거리를 홀로 간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홀로 있는 시간동안 성령께서 예루살렘에서 있을 환난과 고난을 미리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오면 본능적으로 사람을 찾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먼저 하나님을 찾는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의 앞에 그 어떤 환란과 고난을 성령 으로 직감하고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것이다.

• 고난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받을 고난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급히 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게 확고하게 자신이 갈곳과 있어야 할 곳을 알수있었던것은 바울이 하나님과 홀로 있던 시간에 얻어진 것이다. 우리가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깊어질때, 혹은 혼자 있을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는 축복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이 어려운 곳인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길 원하시는 곳인지를 결정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도 성만찬 후에 체포될 것 을 아셨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삶에 기쁨과 하나님을 사랑함이 있다면 당신은 홀로 하나님 앞으로 나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의 마음에 기쁨이 점점 희미해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희미해 지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 보다 다른것에 더 집착해 가고 있는 사람일수 있다.

• 혼자 있을 때 자신의 헌신과 희생의 분명한 목적을 알게 된다.
바울이 미둘레네에서 에베소의 지도자들과 다시 말씀으로 훈련하며 이 두 가지를 상기시켰다. 첫째는 바울의 헌신의 목적이다. 바울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길 원하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헌신과 희생이 삶의 목적이 되면 위험하게 된다. 희생과 헌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목적이다. 그 목적이 상실하면 희생과 헌신이 자기의 우상이 된다. 당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한 영혼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나는지 명심해야 한다.

• 홀로 있는 시간은 성령이 사람들을 감독자로 세우고 인도하고 계심을 보게 해준다.
28절에 보면 바울은 두란노에서 12명의 제자를 세우고 양육한 것이 본인의 노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성령님이 감독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영혼이 약해질 때 나타나는 증상 중에 하나는 내가 모든 것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생각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야만 볼 수 있는 일이다.

• 홀로 있는 시간은 사랑과 정이 있는 사람으로 세운다.
36-38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하면 매정하고 냉정하던 사람이 사랑과 정이 많은 사람으로 바뀐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보면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 말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미숙함을 깨닫는다. 깨달으면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꾼다. 그리스도인은 사랑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민한다. 원수도 사랑하라 했는데 원수가 아닌데도 사랑이 가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한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을 기대하면 안 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옮기고 떠나야 한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할 때 우리의 사랑은 점점 성숙되어 간다. 바울은 오래 참았다. 바울은 불같은 그의 성격을 온유함으로 변하려 생각했고 깨닫고 성장해 갔다.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들을 통해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들 을 통해 다시 순수한 정과 눈물과 인간미를 회복한다. 사람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의 마음에 정과 눈물과 인간미를 잃고 냉정하고 무정해 질 때다. 이런 내면의 정과 사랑은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면서 깊은 자존감과 내면의 견고함을 갖게 해준다. 

깨어 있는 감사

골로새서 4:2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설교요약>
• 감사하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이다
성경에는 '깨어 있으라' 라는 말씀이 많다. 감사 속에는 사랑, 겸손, 진실, 섬김, 기쁨, 소망이 모두 들어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는 사람에게서는 쉽게 교만함을 찾아볼 수있다. 그 교만 안에는 위선, 미움, 슬픔, 절망도 함께 있다.

• 원망할 때 모든 축복은 불행으로 바뀐다
광야에서 모세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재앙으로 죽고 오직 2명만이 생존했다. 이런 결과의 원인은 감사와 원망에서 비롯되었다. 죽은 10명은 원망했고, 그 원망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했다. 이들은 자신들만 원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실 축복들을 원망하게 했다. 둘째, 아직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그 땅을 악평했다. 셋째,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원망하고 남들도 원망하게 했다. 살아 남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감사의 특징도 세가지였다. 첫째, 이들은 온 회중으로 감사하게 만들었다. 둘째,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을 그냥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심히 아름답다고 했다. 셋째, 지도자를 대적하는 자들을 향해 '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민:14:9) 며 사람들로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존중하게 했다. 결국 원망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려 했던 모든 축복을 발로 걷어찬 셈이 되었다. 그러나 감사한 사람들은 그 모든 축복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밟는 축복을 누렸다. 바울은 구약의 이런 사건을 거울로 삼고 원망치 말고 감사하라며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9-10) 신약의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불평하고 원망한 내용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보통 오랜 시간 공동 생활을 하다 보면 불편함 점이 많고, 그 가운데 서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특별히 제자들의 불평 불만을 한 기록들이 없다.

• 막막한 상황이 와도 먼저 다시 감사하라
그러나 그렇다고 딱히 감사를 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동거동락하셨던 예수님에게서 감사의 모습이 드러난다. 오천명의 굶주린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주님께 드린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개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gave thanks)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6:11) 예수님은 어떻게 이 작은 음식으로 오천명을 먹일 수 있나요? 라며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막막한 현실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이 말씀을 기록한 저자는 사도 요한 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감사의 모습을 그냥 건성으로 보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먹고 남은 조각들을 모두 버리지 못하게 하시고 바구니에 담게 하신 것도 기록했다. 또한 바로 후에 다시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명이 먹고 남은 것을 일곱 광주리에 거두게 하셨다. 이 것은 후에 배고플 때 먹게 할 용도로도 모으게 하셨지만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들을 잊지 말고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먼저 감사하고 그 은혜를 붙들고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증거가 거둔 일곱 광주리 떡 다음 이야기에 있다. 배를 타고 제자들과 함께 건너편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떡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이스트(누룩)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스트처럼 작은 그들의 영향력에 빵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쉽게 착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향력이 퍼지는 것에 대한 경고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룩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일곱 광주리 거둔 떡을 가지고 오지 못한 것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서로 눈치를 보면 이야기 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마:16:9-10)

• 떡과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고기는 훈제 되었거나 이미 요리가 되있었던 한 끼 음식이었음을 고려할 때 말라 비틀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온몸이 비틀어지고 일그러지는 고통을 상징한다. 따라서 열 두 광주리와 일 곱 광주리에 거두게 하신 떡과 물고기는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이 주신 구원을 한시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우리는 전에는 어두움이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빛 안으로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어둠에서 구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가? 그렇다면 깨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 와도 열 두 광주리를 붙들고 먼저 감사하는가? 그렇다면 깨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직 주시지 않았지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갈렙처럼, 여호수아처럼 먼저 감사하는가?
그렇다면 깨어 있는 것이다. 

살아야 할 청년 유두고

사도행전 20:1-12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 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설교 요약>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열심히 하나님이 계신 여러 모임에 참석해도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음을 청년 유두고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유두고처럼 죽어버린 이 시대의 청년들의 영혼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다음 4가지 영적 원리를 기억하자.
첫째, 먼저 청년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둘째, 삶으로, 행동으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의 본을 보여준다.
셋째, 어떤 형태로든 영적으로 죽어 있는 청년들을 계속 끌어안고, 말씀을 심어주고, 사랑을 주고, 지도자로 세워주려 한다.
네째, 소망을 주고,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그들 곁에 서 있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유두고의 이야기를 바울의 드로아 사역 중  대표적 일로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청년의 때에 살아 있는 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청년에 때에 하나님이 낛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찾으면 기쁨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낛’, ‘기쁨'인 것이다.

둘째, 노년의 때에는 생각해 내는 일이 어렵고 받아들이는데 둔해지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만지실 때 흘러나오는 통로다. 이 때의 생각들은 하늘의 영감과 통찰력과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확신과 소망들로, 그것들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을 보고 체험하는 축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연로해지면 생각도 노쇠해지고, 영감과 소망도 현저히 약해지므로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열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체험하는데 헌신한다는 것이다. 체험의 가장 큰 장애물인 ‘실패에 대한 두려움’ 또한 수많은 실패의 체험을 통해 제자들이 스스로의 연약함을 보고 주님을 어떻게 신뢰하게할지 깨닫게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도 극복할 수 있다. 신중한 것도 좋지만 상황과 타인의 평가를 너무 두려워만해서는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주실 때 열정적으로 체험하고 도전하라. 그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두 가지 평안

요한복음 14:27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017 CROSS 특별 예배

<설교요약>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두 가지 평안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이다.

• 세상이 주는 평안
첫째: 탐심과 연결되어 쉴 수 없는 평안이다(눅12:19)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한 부자가 많은 재산을 쌓아 놓고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속삭인다. 이 사람의 평안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소유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소유에 생명을 걸고 사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에 대한 해결점은 20-21 절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의 평안은 탐심과 연결되어 있고 그 탐심은 상황에 따라 사람을 쉬지 못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의 탐심으로부터 오는 평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가려면 자신이 가진 소유를 하나님의 자리에 놓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오늘 생명을 잃으면 그 소유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가진 소유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천국의 평안이 오기 때문이다.

둘째: 고통과 상처와 천대를 주는 평안이다(요19:3)
요한복음 19장 3절에 보면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고통과 치욕, 멸시를 주기 위해서 왕이나 귀족들이 입었던 자색 옷을 입히고 손으로 때리면서 평안하라고 속삭였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다. 이러한 세상의 평안은 예수님의 몸에 자색 옷을 입혀 주는 것처럼 일시적인 고통을 잊게해 주지만, 후에 수치와 고통, 두려움이 동반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결과를 알면서도 이 세상의 평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그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것일까?
첫째: 예수님의 평안은 예수님의 은혜로 치유 받았지만 스스로를 부정한 존재로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평안이다. (막5:33-34)
마가복음에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나온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한 번만 만지면 나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고, 병이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유대교의 율법 때문에 두려워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으면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할거라는 죄책감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여인처럼 예수님이 부르실 때 여전히 예수님과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느끼며 살 수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 5장 33-34절에 보면 예수님은 여러가지 은혜의 통로를 통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평안함과 자유함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는 평안이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보면 예수님의 평안이 임하면 내일 일에 대해서 준비해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축복이다. 세상의 평안은 불안이 올 때 세상의 일시적인 쾌락과 흥분을 주는 곳으로 도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그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불안과 두려움의 일상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오히려 더 큰 평안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된다. 내일 일은 우리가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내일' 이라는 명사는 인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일을 주장하고 있는 인격이신 하나님이 내일을 주관하도록 맡기라는 의미가 된다. 내일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라. 그 분이 우리의 내일을 미리 준비하시고 인도하신다.

빛의 권세

에베소서 5:8-11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설교요약>

빛은 어두음을 드러낸다. 어두움은 사람들의 내면, 즉 영혼 안에 남아 있는 어두움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빛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려 할 때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삭개오가 세리장이었을 때 인파를 뚫고 예수님께 나아가려 했으나 사람들이 길을 내어주지 않아 예수님께 다가갈 수가 없었다. 결국 삭개오는 나무위로 올라가서야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그를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막은것은 사람들(어두움) 인 것이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성도를 대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빛으로 어두움을 밝혀라”는 것은 어두움에 참예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물드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어두움은 열매가 없고, 있다면 파괴적인 열매 뿐 이고 빛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어두움이 우리를 막는 것이다.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빛의 열매는 9절의 말씀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나무였다. 여기서 나무는 삭개오의 원함을 이루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나무는 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사람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고, 혹은 만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극적인 일들이 사람을 통해서 일어난다. 나는 누군가의 빛이 되어 주고 있는가, 아니면 빛을 가리고 있는가? 

하나님의 빛이 그의 자녀들을 통해서 한 영혼의 어두움을 비출 때 그것을 보고 무릎을 끓고 엎드리면 하나님은 막힌 것들을 부어 주시고 채워 주시기 시작한다. 어두움은 믿지 않은 자들에게 나가지 못하는게 하고, 믿는 자들을 통해서 예수님 보지 못하게 막아서는 역할을 한다. 내 안의 깊숙이 자리잡은 어두움을 자백하고 고백하여 그것이 깨어져 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존재하는 빛을 보고 나오기 시작한다. 

어두움은 영혼이 없는 겉만 번지르르한 언어다. 겉으로는 기도하고 좋은 말을 하고 가르치는데 내면에서는 사랑도 느껴지지 않고 진실도 없고 공허하다. 겉으로는 영적이나 실상은 아무 것도 와 닿지 않는 공허함 뿐이다. 겉으로는 별거 없어 보이는데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데, 그 삶 자체가 자유로우면서 경건하고 평안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한다. 말씀을 읽으면 영혼이 맑아지면서 분별력이 생기다.

영적인 방법으로 싸워 영적전쟁에서 이기고 빛의 권세를 사용하는 방법 10가지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1. 매일 아침 가장 조용한 시간에 성경을 읽어라. 혼미한 마음이 정화되어지고 맑아진다. 
2. 마음이 와 닿는 말씀을 적고 내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주는, 그 문제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적어보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라.
3.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적거나 입으로 고백해 보라. 그리고 하나님께 맡겨라. 
4. 자꾸만 신경 쓰이게 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임하도록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그 사람의 어두움이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5. 분노가 아니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라. 분별은 분노와 반대되는 것이다. 분노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해가 생겨날 수 있기를 구하라. 
6.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단어들을 하나 하나 노트에 적으라. 그것은 예언 같은 것이다. 미리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들을 붙들고 주님께 올려드리면서 기도하라. 말씀을 읽고 나면마치 과즙기의 즙을 짜내 듯 자연스럽게 기도가 흘러나온다. 기도하기 힘들 때는 집중해서 말씀을 보면 기도할 제목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7. 하나님이 이 싸움을 통해서 확장시키려고 하는 나의 성품이 무엇인지 알아보라. 그 것을 배우고 주님께 감사하고 순종하라. 
8.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9.  주위의 분별없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속지않도록, 영향을 받지 않도록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라. 하나님의 빛은 다 동일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 빛에 임재하는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시각을 갖게 된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은 동일하게 그것을 간파해 낸다. 
10.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님은 결국 어두움의 정체를 드러내실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것을 폭로 시킨다. 우리의 앞뒤를 가로막거나 힘들게 하는 것들을 두려워 하지 마라. 우리가 신경 쓸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고 거짓없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Father Heart of God


요한복음 17:6-26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설교요약>
Jesus prayed to the Father, a day before he was crucified. This prayer is very significant because it reveals to us what is inside of the heart of God, heart of Jesus, and heart of the Holy Spirit. It also explains the reason for Jesus to die on the cross, that is, the purpose of our redemption. The purpose is about intimacy with God. Jesus was born as a human being and he is the son of God. He came to demonstrate for and to teach us that is the way.

God is Love 
In John 14, Jesus said ※I do only what I see the father doing.§This decision were right because he didn't do his will, but did the will of the Father who sent him. This is a completely new radical life style that Jesus brought. In the world, most religious people like to follow the rules. Jesus' lifestyle didn't throw away the laws, but he fulfilled the law. This way of fulfilling the law is based on the intimacy with the Father's heart and the father is love. God is love. God does not have love. He is love, living love, only real love there is on earth and heaven. This love is completely free form selfishness.

When Jesus challenges us to follow Him that means to live the same kind of intimacy and power that comes from relationship with God. Trust God for this radical lifestyle that is not based on rules. But based on the ability hear what God is sayings, then you are no longer under the law. God is calling us to live by faith. Jesus died on the cross to make this possible and prayed that love the Father has for his son will be in us. Love that Father has for his eternal son is the same love that God has for each one of us. We must encounter and experience the love of the Father for a child. Jesus died on the cross to redeem us, so that we can experience the love and have faith that Holy Spirit will fill us with the power to know what God is each day. 

We are forgiven by the blood of Jesus on the cross. So that we can have intimacy with Father and live from relationship that is pure love, love that is eternal, and love that is not selfishness. This is the way of life for Christian. The way of the life is the way of the cross; the way of the cross is about the love of God. 

Hearing God's Voice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Christians is to learn to live like Jesus through hearing the voice of God. For that, we need to pray everyday to God to fill us with the Holy Spirit, life of the trinity. We are created to be filled with the living presence of God for purpose of redemption. It's the heart of being the disciples of Jesus. Jesus died so that God will become one with us. When Peter walked on the water, he took a step with faith. But he let go of the faith when he was distracted by wind, then started to sink. It's not because God's word failed, but Peter's faith failed. But God of love with no condemnation grabbed Peter and pulled him up. We have faith that God will do the same for us as we are learning.

Every day he will lead us to the cross, which is to die. Cross is about dying; but at the moment there is death on the cross, resurrection happens. New life comes. Lay down your life and your will, but look for the will of the Father. Make your life's main goal to hear God's voice and to live the life of Jesus. God is living in us when we live by faith.

고난을 통한 창조

사도행전 19:21-41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설교요약>
고난을 통한 창조     
바울이 에베소에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2년 동안 열 두 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결과 그 제자들을 통해 터키 전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아데미 다이아내 신을 숭배하며 마술을 행하던 신전의 리더들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자신들의 마술 책을 불태워 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삶에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보게 된다. 

 사람의 영향력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판매하는 큰 사업장이 있었다. 그 사업장의 사장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으로 거느린 종업원의 수도 많은 성공한 사업가였다. 어느날 데메드리오는 다이아나 신상의 판매율이 떨어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자신의 사업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것임도 간파했다. 신상 판매율 저조의 직접적 원인은 바울의 전도 활동으로 사람들이 아데미 숭배를 멀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수 천 수 만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일이 아니라 에베소에서 성령을 받고 2년 동안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던 열 두 명, 소수의 제자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일이였다. 그리고 그 열 두 명의 제자들 뒤에는 바울과 그를 도우며 따랐던 몇 명의 신실한 제자들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자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해 아데미를 외쳤고, 자극된 군중 심리로 흥분한 군중들은 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사로잡아 당시 공공집회 장소로도 사용된 연극장으로 끌고 갔다. 흥분하여 모여든 군중들로 인해 바울 대신 체포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시 섬기게 된 제자들로 바울과 함께 다시 3차 전도 여행을 하던 중 에베소에서 체포되어 목숨이 위태롭게 된 것이었다. 바울을 포함해 가이오나 아리스다고 같은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위험과 고난을 겪었음에도 계속해서 선교 여행을 통한 전도를 지속했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
당시 소요 사태 등을 책임지는 정당 중앙 집행 위원회 서기국의 우두머리인 서기관은 데미드리오가 일으킨 소요를 제압하고 군중들을 순식간에 흩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그 서기관을 통해 하나님은 아무 잘못 없이 붙잡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풀어지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헌신하며 따라가는, 그 분의 사람들을 철저히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하나님은 왜 이런 고난과 위험들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아주시지 않고, 바울, 가이오, 아리스다고 같은 불쌍한 사람들이 이런 고통과 환난들을 꼭 통과하게 하시는걸까? 반문할 것이다. 하나님이 왜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과 환난을 허락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그 비밀을 밝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심으로 그 분을 깊이 찬양하고 그 분의 임재를 경험케 하신다
만약 당신이 조용히 앉아 당신에게 반복되는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위로들을 노트에 적어 본다면, 하나님의 수많은 위로와 그 분이 여러가지로 공급하신 것들이 그 문제들을 통과하는 가운데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셨음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문제를 통해 깨달은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께 낮아진 마음으로 구하게 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그 분의 세심한 사랑을 경험하고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위로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신다
우리의 삶에 허락된 환난은, 환난과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냉담하고 무관심하고 심지어 정죄하기까지했던 나의 교만한 마음과 죄악을 보게 하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위로하는데는 심리학적 지식이나 스킬보다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능력이 될 수 있다. 즉, 누군가를 살리고 치유하고 영적으로 깨우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살리시고 치유하는 분이심을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셋째. 고난이 넘칠수록 위로가 더 넘친다.
바울, 가이오, 아리스다고, 베드로, 그리고 성경의 셀 수 없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 그들이 계속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고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난이 넘칠수록 예수님의 위로가 더욱 넘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로를 많이 받으며 고난을 체험한 사람들은 너그럽고 겸손하고 진실되며, 그 마음이 평안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어 지옥에 매여 사는 한 가정과 나라와 열방이 풀어지게 하여 작은 천국을 만들어가는 변화들을 가져왔다.

환난의 시기에 고난을 피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무엇을 해보려 하지 말고 그냥 고난을 받아보라. 아픈 마음과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고난 속으로 주님을 계속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우리 내면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주신다. 주님께서 처음보다 더 새 것, 더 좋은 것으로 우리를 다시 재생되게 하실 것이다.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가?

사도행전 19:1-20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헬, 또는 침례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1)세례를 받으니 헬, 또는 침례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설교요약>
제자들을 세우는 일
1절에 보면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제자들을  바울이 에베소에서만나게 되는데,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묻는다. 하지만 2절에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 대답한다. 6절에서는 바울이 그런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이미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성령을 알지조차 못했는가?이다. 고린도 전서 12장 3절과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에베소의 제자들은 이미 성령 이 그들 안에 거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베소의 제자들은 성령 충만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고 믿었지만 사도행전 1장 4-5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말씀에 따라 성령을 사모했고,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게 된다. 또한 에베소서 5장 18절에 바 울도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성령 충만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사도행전 2장 4절에보면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어 성령이 내 안에 거하셔셔도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충만의 목적첫째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의 사랑과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함이다
6절에 보면 방언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지만, 성령충만의 외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증거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 분의 사랑과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3절에 보면 바로 이것이 예언이다. 예언 기도는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이다. 즉 사람들에게 덕과 위로, 격려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은 마음에 찔림을 주는 말씀을 해도 사람들에게 위로와 마음의 치유를 주는 특징이 있다. 또한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셔서 깨닫게 해주심으 로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하시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하나님의 영은 이런 일을 행하신다. 설상 한 영혼 의 숨은 죄를 드러나게해도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영으로 그것을 드러나 게 함으로 그 상한 마음에 평안을 주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나 안수해 준 제자들은 열 두 명이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두란노 서원에서 2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가르치는 사역을 하였다. 그 결과는 10절에 보면 ‘아시아 지역에 사는 모 든 이들이 주의 말씀을 듣더라’로 나타난다. 바울 혼자서 이 넓은 지역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바울이 말씀을 전했던 열 두 명의 제자들을 통해 지금의 뉴욕과 같았던 에베소에 모인 전세계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이 열 두명의 소수를 통해 타락하고 문란한 도시 에베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셨다. 이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그냥 그리스도 인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신다. 또한 그냥 제자가 아니라 성령 충만을 갈망하는 제자를 찾고 계신다.

성령 충만한 제자가 되기 위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이 말씀을 볼 때 마다 '함께 구하면'에 초점을 두었었다. 그러나 최근 묵상에서는 '합심' 이라는 단어가 눈과 마음에 들어왔 다. 그것은 서로 동일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마음이 서로 서로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신다. 그 동일한 마음으로 함께 구할 때 성령이 부어진다.

새롭게 하는 사랑 2

사도행전 18:12-28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설교요약>
신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크게 세 유형의 사람들로 분류할 수 있다.

육신의 필요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첫번째 무리는 육신의 필요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한 아이의 음식이였던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의 무리를 먹이고도 남는 음식들을 제자들에게 열 두 광주리에 담게 하셨다. 이 기적을 보고 오천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왕으로 삼으려 했다. 이것을 미리 아신 예수님은 홀로 조용히 산으로 가 몸을 숨기셨다. 이튿날 이 수 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찿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찿기 위해 배를 타고 가버나움까지 가는 열정을 보였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이 내려주셔서 먹었던 만나라는 떡이 바로 자신을 예표하는 그림자였음을 말씀해 주셨다. 자신이 생명의 떡이기에 자신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될 것이라 하셨다. 썪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을 위한 양식을 위해 일하라 하셨다.

예수님 모시고 자신의 힘으로 사는 이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택하여 사역을 시작하던 초창기였다.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셨는데, 풍랑이 일어나 배가  바닷물에 덮이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자기들이 죽게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불평하며 예수님을 깨웠다. 이때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고 잠잠케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왜 무서워하고 믿음이 없느냐?'라며 책망하셨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예수님은 모시고 살지만 여전히 자신이 삶의 주인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인생의 배에 모시고 있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나 삶의 어떤 힘든 문제가 찿아오면, 예수님을 자주 원망하고 그 모든 원인을 주님께 돌린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만 자신들의 주님으로 예수님을 인식하지 않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크게 두 가지 은혜를 주시고 계셨다. 첫째, 삶에 적용할 생명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셨고 둘째, 많은 표적들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간섭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보여주셨다.하지만,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생명의 말씀을 들었느냐가 맏음의 성장과 태도의 변화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때문에 예수님은 받은 말씀과, 삶 속의 공급하시는 기적을 토대로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어떻게하면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을까?그 모델을 세번째 유형의 사람을 대표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찿을 수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처음에 로마에서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을 추방하는 일로 고린도에 생업을 따라 이민 왔다. 그러다 바울을 만났고 하나님이 어떻게 고린도에서 역사하시는 지를 모두 지켜 보았다. 회당장 그리스도와 그의 온 가족의 회심과 그 후임자 회당장 소스데네의 회심과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하나님이 바울과 함께 하시며 그를 강권적으로 사용하시며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보고 체험하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이 두 사람을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은 사람들로 소개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5) 이 두 사람이 마음을 새롭게 한 방법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뜨거운 사랑'이었다. 이 두 사람은 바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감사를 받을만큼 사랑과 열정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가장 안정된 순간에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든 순종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사랑이 아볼로에게 흘러갔고, 아볼로는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의 가르침과 함께 흘려 보냈다. 이렇듯 세번째 유형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다. 사랑하며 사는 제자다. 마음이 새롭게 되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다. 이러한 사랑하는 마음에 더해지는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의 폭포로 우리의 막혀 있는 영혼의 답답함이 뚫어질 것이다. 그 동안 없다고 불평하고, 비교하고, 원망하던 마음이 떠나고,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삶에 부어주고 계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소망의 일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또한 당신의 마음을 긍휼함으로 채워 우리가 도와주고 싶은, 아볼로와 같은 사람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헌신하라. 

우리는 이 세 유형 중에 어디에 있는가?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있는가? 좋은 말씀과 체험은 많이 하나, 마음이 냉랭하진 않는가? 그렇다면 세번째 유형으로 변모하라. 세번째 유형은 받은 말씀과 체험들을 사랑으로 매일 새롭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 때 당신의 영혼은 소망과 긍휼과 담대함으로 매일 새롭게 채워질 것이다.

새롭게 하는 사랑 1

사도행전 18:12-28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