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고통

사도행전 14:1-10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없는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설교요약>
고통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의미가 있는 고통과 의미가 없는 고통이다. 의미 있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미리 예비하신 고통이며 그 안에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 크게 고통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일을 회피하거나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르길 주저하곤 한다. 그 때 우리가 겪는 고통이 과연 의미 있는 고통인지 아닌지는 다음 네가지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길로 인도를 받는다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로 옮겨 온 바울에 의해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받은 축복처럼, 하나님이 주신 고통은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 받는 고통이 하나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의미 있는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이 주실 축복의 열매에 집중하게 된다
고통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과 축복의 열매에 집중한다. 고통과 가시는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처럼 고통의 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들과 일들에 더욱 자신의 시간과 삶을 드릴 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열매 맺음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가시로 열매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열매 속에 가시를 박아두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열매의 즙들이 가시를 녹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통 속에서 고통 받음을 원망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와 선물들에 집중해야 한다. 

3) 자신의 일을 스스로 컨펌하지 않고 하나님께 컨펌 받으려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을 따르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그 일을 해결해주셔서 우리가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그러므로 어떤 불가능한 상황 앞에 있을 때가 우리가 주님께 컨펌 받을 때임을 기억하고 간절하게 그 분을 향해 구해야 한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셔서 하는 일인데 하나님이 기적과 표적으로 컨펌해 주지 않으시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4) 누군가 나를 통해 치유되고 은혜를 받는다
바울이 전한 말씀으로 믿음이 생긴 평생 앉은뱅이였던 루스드라는, 바울이 그를 향해 소리친 후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성경에서 보듯 하나님은 병자를 치유하시는데 바울을 사용하셨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그 말씀은 루스드라에게 자신이 낳을 수 있다라고 하는 소망을 주었다. 

이 증거들을 통하여 우리는 과연 의미 있는 고난을 받는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고통이기에 그 고통을 통한 축복의 인도도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으며 고통 그 자체보다는 우리에게 주실 열매를 기대하여야 한다. 또한 고통 안에서 나아갈 때 스스로가 아닌 하나님께 컨펌을 받아야 하며 다른 누군가가 내 고통을 통해 은혜를 받는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고통임을 알기에 우리는 더 깊숙히 고통 속으로 들어가 견딜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