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변화

사도행전 11:28-12:10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착한 믿음

사도행전 11: 1 - 26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 가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설교요약>
스데반의 핍박으로 흩어진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의 지도자로 파송했다. 본문에서 바나바가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다.

  * 1단계 : 소유를 드림
첫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지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삼천 명이 회개했다. 또한, 성전 미문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베드로에 의해 치료 받고 걷게 되었을 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오천 명이나 되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으며, 그 중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에게 가져왔다. 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드리고 난 후 일생의 대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주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으나, 바나바는 지속적으로 놀랍게 변화하고 성장해 갔다.

 * 2단계 : 타인이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
바나바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그의 변화됨을 믿지 않고 그와 교제하기를 두려워하던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바울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며, 바울이 다른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훌륭한 다리 역할을 했다. 바나바는 누군가가 자신을 통해 잘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 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형태도 시간이 지나면 회의를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더 위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더욱 충실한 삶을 살기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만약 바나바가 이런 결정을 했었더라면 그의 성장은 멈추고 점점 퇴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크고 넓은 사고는 점점 좁아지고, 급기야는 타인의 삶에 도움을 주기보다, 타인에게 장애물이 되는 삶으로 전락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한 일의 가치를 알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경우가 있으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우리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큰 능력도 없고, 대단한 것을 주지 못한다하더라도 상대는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을 안다.

* 3 단계 : 착한 그리스도인
스데반의 일로 핍박이 심해져 각지로 흩어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일부는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지금의 시리아인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이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 왔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에 갑작스런 부흥이 일어 났고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인도할 지도자로 '바나바'를 파송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안디옥에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열정적이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었음에도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그들의 지도자로 보낸 이유는 그의 인격 때문이었다. 바나바가 자신의 소유를 드리고 바울의 길을 열어 주는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나바는 계속 착하고 신실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경험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해 봤다는 식으로 허세를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또한 과거에 받은 은혜의 경험을 내세우며 자기 교만과 믿음에 대한 회의에 빠져 주님을 향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힘을 빼는 그런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착한 사람으로 변함이 없었다. 그는 안디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고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격려했다. 착한 마음의 정의는 명료하다. 다른 사람이 은혜받고 사랑받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누군가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처럼 사는 마음이다. 자신은 빛나지 않아도 누군가가 창공을 향해 더욱 비상할 수 있도록 끈이 되어 주는 것이다. 착한 마음으로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착해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착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사도행전 10:1-16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설교 요약>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곳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세 번 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예언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이 말씀을 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 베드로는 자신이 기대하지 않은 사람들과 지역으로 다니며 하나님에 의해 사용을 받았다.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그의 삶이 인도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그분의 말씀대로 사람을 인도하실까? 이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그 분의 약속들을 이루어 가실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

하늘이 열리는 시간 육시에서 구시
베드로는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을 때 로마의 장교 고넬료에게 초청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환상 중에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알려주신 시간은 고넬료의 기도 시간인 오후 3시(구시)이고. 하나님은 베드로에게도 고넬료에 집에 가보라고 보자기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 때 시간은 낮 12시(육시)였다. 12시에서 3시 사이는 예수님께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었고, 동일한 그 시간에 고넬료와 베드로에게는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다. 그 이유는 고넬료에게 예수님을 듣게 하기 위함이였고,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의 그 십자가 사랑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은혜와도 연관되어 있다. 예수님은 전에 포도원 비유를 통해 오전 9시에서 6시 사이에 받는 부름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그 분께 사용되는 특권의 은혜를 받은 것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늘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린다. 그 이름을 믿고 그 분이 십자가에서 9-3시 까지 흘린 피를 믿는 모든 자들이 바로 선택 받고 부름 받은 예수님의 자녀들이다. 그 시간은 우리의 공로나 선행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잊지 않게 하는 증거다.

베드로가 오후 3시에 환상을 통해,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부정한 짐승들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이것들을 먹으라고 명령하신다. 베드로는 먹기를 부정하지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부정한 짐승은 이방인들을 상징하는데, 먹기를 부정했던 베드로 속마음은 그 때까지 율법적이었었다. 분명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순수 유대인이 아니었던 사마리아에 들어가 빌립의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에게 안수했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베드로가 두루 다닌 곳은 유다 안에 있던 다른 이방인들이 몰려 살던 지역까지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이 깨끗하게 한것을 속되다'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이방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혹시 베드로처럼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의 삶도 베드로처럼 마음과 행동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 앞에 그 마음을 고백하며,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려 할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신다.

 

성령을 알아가라

사도행전 9:31-43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제자들

사도행전 9:19-30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마지막 순간에

1 주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 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 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희미한 순종에서 분명한 음성까지

사도행전 8:9-40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하나님을 찾으라

사도행전 8:1-8
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예레미아 33:1-3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 돌아오라_수련회 말씀(2)

에스겔 15:1-4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 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 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20년 전의 오늘_수련회 말씀(1)

창세기 20:1-18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줄 알찌니라 
8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대로 거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볼 수 없는 열매

사도행전 6:8-7:60 (봉독 사도행전 7:51-60)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영혼의 소리

사도행전 6:1-6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제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행-6: 1). 이 제자는 하나님께 헌신되고 삶에서 예수님처럼 살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자신의 것을 희생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제자를 일으키시는 것에 관심이 많으시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제자를 일으키는데 관심이 많으셨을까?
 
더 깊은 내면의 채움을 위해
2절을 보자.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하나님은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께 계속 기도하는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 부르셨다. 근데 사도들이 구제하는 사업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에 지장이 생겼다. 그래서 구제에 전담할 일곱 명을 선택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필요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영적인 양식이 채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하지만 사도들이 구제의 일 속에서도 구제를 받던 사람들의 원망과 분열의 모습을 통해 사도들의 삶의 우선순위를 깨닫게 해주셨다. 사악한 일들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만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는 분별하기 어렵다. 즉 하나님의 일은 모두 선하지만 그 일속에서 우선순위를 잃으면 선한 일도 우리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기도하기 시작한다. 이 일이 회복되면 우리의 영혼은 다시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진다. 당신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뿐이다. 그 사랑과 은혜는 말씀과 기도로 확인되고 채워질 수 있다. 당신이 하는 일로 당신을 평가하지 말고 당신 내면의 영혼의 상태와 생각들로 당신의 삶을 평가하라.
 
더 근본적인 것을 붙들어라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대신할 일곱 명을 선택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들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선택했다. 성령충만의 결과로 주어지는 하늘의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선택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을 선택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행: 6:7) 이것은 일곱 명의 선택된 사람들이 사도들이 온전히 말씀과 기도 사역에 전념하도록 얼마나 잘 지원했나를 보여준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은 그들 안에도 동일한 성령의 열정이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사람을 세우는 기준은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말씀을 전해 영혼을 살리고 제자를 삼는데 생명을 건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릴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길 원하신다. 단순이 우리의 일시적인 소원 들어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 소원이 이루어 질 때 또 다른 공허와 두려움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내면에 근본적인 만족을 줄 수 있다.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드릴 때 그분께서 우리의 깊은 곳의 죄의 가죽을 벗겨 내시고 진정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겸손한 분노

사도행전 5:33-42
33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쌔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

사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다가 두번째 투옥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을 감옥 밖으로 이끌어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했다. 이튿날 이 사실을 모른채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감옥에서 끌어내오라고 했다. 부하들은 감옥문도 그대로고 지키는 사람들도 그대로되 갇혔던 사람들이 없다고 보고했다. 그 시각 풀려난 사도들은 성전에서 가르치고있었다. 성전 책임자와 제사장들은 이 일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난 것에 개의치 않고 성전에서 사도들을 끌어 오라고 했고 성전 담당자와 부하들은 그들을 잡아왔다. 그리고 유대인의 정치적 공회 앞에 그들을 세웠다. 공회는 사도들에게 왜 예수를 전하는가 심문했다. 그때 그들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5:31) 라고 담대히 대답했다.  이때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된 공회는 사도들을 죽이려 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행:5:33)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가는 것은 왜 종교지도자들이 그토록 사도들에게 분노하고 죽이려 까지 했을까? 이다.

그것에 대해 사도행전 5장 28절이 대답을 주고있다.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다고 하심으로 자신들이 죄인이 되는것을 참지못했다. 자신들은 거룩하고 구별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는데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죽인 그들을 죄인으로 정죄한다.

사람이 분노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어떤일을 해야 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을때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그 분노는 수치심과 죄의식을 동반한다.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동안  누군가 타인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우리 자신이 죄책감을 가질때 분노하는 연약한 죄성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노는 더 쉽게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는 겸손한 분노다. 그러나 교만한 분노가 있다.이 둘 중에 하나님께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분노는 두번째 교만한 분노다. 사도들이 종교지도자들에게 한 말을 다시 보자.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5:31) 하나님은 그들을 정죄하고 파멸시키고 심판하시기 위해 사도들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걸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었다고 전하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들과 사람들에게 사도들을 보내셨다.

성경에는 첫번째 분노를 가진 사람들이 먼저 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은 창녀들, 세리들, 죄인들이라고 만 생각하기 쉽다. 그 당시 사회의 낮은 계층의 천박한 삶을살던 죄인들이니 당연했겠지 라고 치부할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도덕적 명성과 수양을 가진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백부장, 헤롯왕의 메니저 였던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로마의 장교 고넬료 같은 사람들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예수님께 나와 죄사함을 받았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이나 가진것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나와 자신들의 분노를 인정한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 들은 분노하면서도  그것이 자신들의 위선과 우월감과 교만에 기초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분노에 머물러 있는가? 겸손한 분노인가? 교만한 분노인가?

당신이 만약 당신의 겸손한 분노를 보았다면 당신에게는 한가지 분명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고난 자체를  기뻐하지 않고 고난받는 동기를 기뻐한다

사도들은 다시 매를 맞고 풀려났다. 이 매는 당시 유대법정에서 죄인에게 때렸던 39대의 채찍질 이었다. 그러나 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을 맞고도 그들은 기뻐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런 끔찍한 매를 맞고도 기뻐한 이유는 자신들이 이런 고난을 당할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이 무엇인가 희생을 했다라고 하는데서 오는 자기만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았다. 그래서 악한 사단이 그것을 싫어해 권세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거듭난 사람은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가를 본능적으로 안다. 그 내면에서 예수님의영인 성령이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문제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서 가치를 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게 된다. 직장 내부의 동료들과 직장밖의 고객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기쁨을 주는 사람도 있고 고통을 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삶을 힘들게 하고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이때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인내로 그런 사람들을 견디어 낼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어 내는 동기는 완전히 다를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인내의 시간에 로마서의 말씀을 떠올릴수 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이 말씀을 통해 인내는 인격을 만들어 냄을 알수있다. 그 인격이 성숙해 질수록 자신만 생각하며 살던 이기적인 삶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치유하고 소망을 주는 삶으로 사용되어 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인내한다. 자신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이기에 어떤 상황이 되어도 쉽게 태도를 바꾸지 않고 진실하게 행동할수 있다. 그러나 비 그리스도인은 이런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수입을 위해 참을수 있다. 화내면 자신만 손해이니 참을수 있다. 타인에게 넓은 마음의 소유자임으로 인정받고 싶어 참을수 있다. 혹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참을수 있다. 그것은 수입과 연관이 안될때면 언제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할수 있다. 타인이 평가가 자신이 원했던 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태도를 돌변할수 있다. 자신이 자존감이 낮아서 바보처럼 당했다고 생각이 들면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수 있다.

다음은 하나님께 겸손히 자신의 분노를 회개하고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삶에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지 보자.

종교지도자들인 공회원들이 사도들의 당당한 반응을 보며 그들을 죽이려 했다. 그들은 얼마든지 종교적인 이유로 사도들을 죽일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들중에 가말리엘이라는 공회의원이 침착하게 일어나 사도들을 내보내고 그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사도행전 6장 38-39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사람으로 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으로 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이 말을 한 가말리엘을 누가는 이렇게 소개한다. 34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행5:34) (행:22:3) 그는 분노에 들끓는 공회의원들을 향해 두 사람의 예를 들며 사도들을 죽이는 것을 만류했다. 하나는 드다로 그는 사람들을 미혹해 요단강을 갈라지게 해 보이겠다던 유대인 마술사 였다. 로마 총독은 군대를 보내어 드다를 참수형시키고 군중을 체포했다. 그리고 주후 6년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은 세금반란을 주도했다. 그도 후에 도망하고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그러나 이 사도들을 죽이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맡기라고 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온것이면 그것을 막을수 없고 사람에게 온것이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회는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따르던 가말리엘의 말을 들었다. 이 일로 사도들은 죽음직전에 극적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성전으로 돌아가 다시 예수는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속해서 전하고 가르쳤다. 가말리엘은 아직 예수님은 몰랐지만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감옥분이 그대로 있는채로 사도들이 밖으로 나가게 된것을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사도들이 자신들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얼마전에 죽은 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것을 전하는 것을 주목했을 것이다. 그리고 셀수없는 무리가 회개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의 내면은 예수님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가말리엘 처럼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무너지지 않는다' 라는 '하나님을 위해 살면 하나님이 쓰시다가 버리지 않으신다' 라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또한 급박한 상황에 하나님이 완벽한 타이밍으로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신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일수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를 돕게 하실수 있다. 당신은 이것을 믿는가?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의 생명이 주께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존할수 있도록 계속해서 오늘도 가말리엘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가말리엘의 뜻은 '하나님이 선하게 보답하신다' 이다. 천사장 가브리엘과 이름이 비슷하다. '하나님의 사람' 가말리엘은 변장한 천사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인내를 연단, 즉 주를 위해 인격으로 성화시키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가말리엘을 보내주신다. 그들의 생존을 보호해 주신다. 겸손히 회개하는 자들에게 가말리엘로 인도해 주신다.

유치한 순종

사도행전 5:12-32
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손을 움직여라.

12절을 보자.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사도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손을 사용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손을 통해 사람들을 축복하며 섬길 때 그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를 일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손을 주신 것은 우리의 손을 통해 사람들을 풀어놓고 치유하고 축복해 주는 기적을 행하시기 위함이다. 엘리사가 요아스왕에게 화살을 들어 땅에 쏘게 한 사건이나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복병을 움직이도록 하는 행위가 유치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요아스왕이나 여호수아에게 어린아이처럼 그들의 손을 움직이게 하신 것이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순종했고 요아스왕은 불순종함으로 승리와 패배로 갈라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손으로 하는 일이 아무리 유치한 일처럼 보여도 성실함과 신중함으로 포기하지 않고 해야 함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 일이 아무리 작아 보이고 유치하게 보일지라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갈망하고 묻는 자세로 할 때 생각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남을 주목해야 한다.

감동 받는 비 그리스도인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행: 5:13) 에서 그 나머지 분들은 비 그리스도인이지만 사도들과 그리스도인을 칭찬했다. 우리가 유치해 보이는 일에도 성령의 인도를 의지하며 진실과 성실로 우리의 손을 드릴 때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 믿지는 않아도 우리를 칭찬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누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부담감이 없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보이며 살기에 자유 함이 있다. 그러려면 내면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의식하기 전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을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 자유게 된다.

베드로의 그림자까지도 사용하심

15-16절을 보자.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느니라' 이 말씀에서 마음에 감동을 주는 대목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을 데리고 거리에 나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닿을 수 있도록 사모한 것이다. 즉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이 자진해서 누군가를 위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것들을 다 바쳐 희생하는 모습이다.

삶의 감옥을 통해서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게 한다.

하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을 이용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신 것과 같이 이번에도 사도들을 감옥에 가둔 것처럼 보여진다. 사도들을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주의 천사가 찾아와 옥문을 열고 데리고 나와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고 하는 새로운 확인을 해주셨다. 그들은 즉시 순종하며 새벽에 사람들에게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쳤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나를 쉽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분께 맡기고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요즘 당신이 만난 삶의 쇠고랑은 무엇인가?

쇠고랑은 종종 우리 내면에 보이지 않는 우상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 우상이 드러나면 죄를 회개하고 그것과 반대되는 미래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묵상하고 적어보라.

이것이 바로 유치한 순종에서부터 시작된 축복들이다. 하나님께 당신의 작고 유치한 순종을 드려라. 

성령에 민감하라

사도행전 5:1-11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은혜를 흡수하는 마음

사도행전 4:32-37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인생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사도행전 4:1-10, 30-31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폭발이 있었던 지표의 지점을 뜻하는 용어이다.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폭발한 장소 바로 아래 지표면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에서 '그라운드 제로' 란 처참하게 무너진 삶의 시간과 장소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따르면서 처절하게 실패를 경험하고 절망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때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하고 좌절할때  기대하지 않는 것들을 기대치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이루신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자신의 경험이나 예측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만을 의지해서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으로 심는 것일까?

예수님께로 부터 온 권세와 능력의 확신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주님을 따를때 우리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태도 혹은 상황에 의해 흔들린다. 우리가 어떤일을 하다가 절망하고 포기하게 될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내면의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커질때 처한 상황으로 부터 회피하거나 포기한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 그 일을 시작하고 장소에 와있는 것을 자신혼자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시작하게 했다고 믿으면 그분이 순간순간 책임져 주실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분을 의지하고 어려운 순간들 속에서 하나님이 계속 돕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필요한데 그 능력이 없다라고 생각될때 절망하기 보다는 그 능력을 공급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 능력이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 공급됨을 체험하게 된다.

자신의 유익과 해 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다

 성령으로 심는다는 것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 돌아올 유익이나 혹은 해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그분을 선택할때 그것이  사람의 뜻과 대치될때는 분명하게 먼저 하나님의 일을 선택한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높여야 하는가?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 이시기 때문이다. 부모는 조건없이 자녀를 사랑하고 신뢰한다. 자녀는 부모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신뢰한다. 왜 삶에서 하나님을 높이는가를 가지고 공격한다면 그것은 부모에게 자녀에게 연인에게 왜 사랑하고 신뢰하는가 조건을 묻는것과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우리 삶의 무너졌던 그라운 제로에 데려가는 것은 다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높이지 않고 그분을 높임으로 우리의 영혼이 영화롭게 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을 쫓아간다  

성령으로 심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을 쫓아간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과 내가 만들어 낸 비젼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나?

첫째.  하나님은  주신 비젼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상기 시켜 주신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비젼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더욱 강해진다

세째.  하나님이 주신 비젼은 불가능해 보이는 특징이 있다. 

네째. 하나님이 주신 비젼은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당신은 성령으로 심는 사람인가? 성령으로 심는 삶은 우리가 볼수없고 인지할수 없는 사이에도 계속 하나님이 그 열매들을 일으키신다. 하룻밤 사이에 5천명의 영혼을 움직이시것 처럼...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그라운 제로에 세우실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구름을 따라가라

민수기 9:15-23
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19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 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 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 오르면 진행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한지 1년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을 지었다.  성막이 세워진 첫날부터 하나님께서 구름과 불기둥으로 보호해주시고 그 구름이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든 짐을 챙겨 그 구름을 따라갔다.  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고 오늘날은 성령님으로 볼수있다.  우리 MMC또한 2007년 3월 마지막주일 처음세운 그날부터 PS199에서 10년간 예배를 드리는동안 성령의 구름으로 우리를 덮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제 그 구름을 옮기시고자 우리를 배터리팍 PS/IS 276 으로 인도해가신다. 하나님께서계속 우리를 그분의 임재로 인도해 가실것이다.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늘이 되시고 불이 되어주실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실일들의 통로가되기위해서 한영혼이 한교회가 마음으로열고 그분을 자신의 내면 깊숙한 방에 모시며 주님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믿음으로 시작하는것이 중요하다.

낮이든지 밤이든지 언제든 길을 떠났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년 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 하였으니'.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 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민:9:21) . .  그들은 낮이든지 밤이든지 구름만 걷혀 올라가면 그들은 길을 떠났다. 이것은 그들이 계획하고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삶이었고 오직 하나님이 계획하고 인도하고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삶으로 살도록 만들어 갔다.당신은 언제든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구름이 떠오르는 신호들

첫째. 신약에는 핍박으로 나타났다.

둘째. 삶의 기근을 통해 나타났다.

세째. 성령의 내적인 음성을 통해 나타났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7)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성령님이 자유롭게 활동하시도록 해드려야 한다. 성령이 기뻐하시는 것은 기도,예배, 찬양, 말씀을 사모하는것이다. 그때 성령님은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신다

네째. 관계를 통해 인도하신다

구름기둥 따라가게 하는 훈련의 이유

첫째.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4) 라고 말씀 하신다.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모든 사람앞에서 헌한 일을 도모하라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12:17-18) 라고 말씀하신다.
둘째. 소유욕에 대한 세상정욕을 없애고 하나님의 일에만 소망을 두고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세째. 더 좋은 것이 아닌 더 위대한 것을 을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하기 위함이다.

이때 가장중요한 것은 순종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의 모든것을 맡기고있는가.우리는 구름을 바라만보고있는가, 따르고있는가?

예수님을 높이시는 성령

사도행전 3:11-26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내 안에 사는 성령을 인정하라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40년 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이 걷게 되었다. 사람들은 놀라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들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일을 자신들이 아니라 자신들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 성령님이 하신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들의 능력이나 경건한 삶이 그 병자를 일으킨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다고 분명하게 선포했다.

오늘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사람이 내면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모두 알고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세상의 현실에 부딪치면 죄된 삶으로 기울어 진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된다. 그러는 두 싸움 가운데서 우리는 죄를 지을때마다 그 결과로 따라오는 내면의 기쁨의 상실과 정죄감, 우울, 두려움, 도피, 어두움을 경험한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두 마음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승리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두번째 하나님이 성령으로 계속 기름부으시는 사람의 특징은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는 사람이다.

 

믿음이 나에게서가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오는 것을 인정하라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는 병나은 사람의 기적을 보고 큰 무리들이 몰려들자 그들에게 자신도 병나은 사람도 아닌 예수님을 주목하게 했다. 베드로와 사도의 믿음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믿고 어떤일을 시도할때 믿음없는 누군가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 주님의 축복안으로 들어옴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믿음안에 모든것이 들어있게 했다.

인간이 가진 믿음의 본능이 장갑이라면 그 장갑이 끼어져야 할 손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 이시다. 그 장갑과 손이 만나면 그 때 부터 누군가 살아나고 진정한 행복을 만난다. 또한 본인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진정한 기쁨을 경험하기 시작한다.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장갑을 자꾸 맞지 않는 다른것에 끼우려 한다. 그래서 불행해 진다.

사람은 그 일반적인 믿음만을 가지고는 내면의 깊은 갈망을 채울수 없다. 그러나 장갑의 손인 예수님을 만나면 그때 부터 특별한 은총이 시작된다. 천국의 은총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믿음이 자라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믿음을 가지려고 키우려고 애쓰지 말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라

베드로는 믿음이 예수님으로 부터 온다고 강조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깝게 지내라는 것이다. 계속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그분으로 부터 성령이 오셔서 당신의 영혼속에 들어간다. 그 성령님은 당신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때 그때 필요한 사랑과 긍휼을 주신다. 그럼 순종만 하면 된다.  

예수님에게서 믿음이 나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

자신이 아닌 예수님으로 부터 믿음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단순한 사랑의 특성을 갖는다. 베드로와 요한은 거침없이 즉시 그 병자를 잡아 일으켰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단순해 진다. 그들의 사랑도 단순하다. 말도 단순하다. 자신에게 타인에게 솔직하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두려움이 없는 사랑을 한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내 쫓기 위해 여러가지를 찿아 헤맨다. 세상정욕, 쾌락, 사람, 물질, 중독적인 요소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진다. 성경은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 이라고 말씀한다. 사랑을 하면서도 두려움이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을 느낄때가 많다. 이유는 사랑이 아직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않는 사랑, 버리지 않는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없는 한가지는 두려움이다. 온전한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볼때 즉시 성령의 사람이 된다. 내안에 행하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매순간 인정한다. 그것의 결과는두려움 없는 사랑, 끝까지 하는 사랑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