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도록 흐르는 생명샘

에스겔 47:1-12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설교 요약>
바벨론 군대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 그 포로 중에 에스겔 선지자도 있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재건될 성전에 대한 두 번째 환상을 기록했다. 에스겔이 보니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와 점점 물이 깊어지고 넓어지더니 시내가 되었고, 강을 이루게 되었다. 그것은 곧 큰 강이 되어 흘러 사해로 들어갔고, 사해는 물이 너무 짜서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인데 성전에서 나온 물이 흘러 들어가니 사해에 물고기가 살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의 바다가 생명의 바다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던 물은 성령을 의미한다. 생명의 물이 흘러 들어오면 죽음의 바다도 생명의 바다로 변하듯이 사망의 그늘에 있던 사람이 생명의 사람으로 바뀐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더 잘 살고, 더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고, 학위를 받아야 행복하고, 성공해야 행복하고, 하고 싶은 걸 다 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돈이 많아도, 좋은 직장을 가져도, 그 삶이 피폐하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를 따르게 되어 있다. 바로 돈, 직장, 학위, 야망, 인기, 연애, 권력, 사회 정의, 이런 것들이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것들을 위해 살아가도록 우리를 밀어부친다. 이런 것들을 통해 본인 스스로 삶의 지배자가 되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삶의 목적이 되는 그 무엇에 점령 당하고 매이게 된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에 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위협을 느낄 때 비정상적인 불안에 휩싸인다. 하나님이 아닌 것이 우리를 점령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된다. 돈이, 학위가, 좋은 직장이, 가정이, 야망이, 권력이 우상이 되어 우리를 점령한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우상에게 점령당한 사람은 절망하게 된다. 사람이 우상에게 잡히면 되살아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소금 땅으로 남게 된다(11절).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풍성히 결실 맺는 삶을 산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을 통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살아난다. 에스겔 선지자는 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양 옆에 각종 과일 나무가 무성하고, 그 잎은 시들지 않고, 그 실과는 그치지 않는 환상을 보았다. 사람이 성령으로 인해 생명이 회복되면, 그 사람의 삶에 열매가 맺힌다.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려면 우선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사람이 결실 맺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따르는 것 뿐이다. 돈, 학위, 좋은 직장, 야망, 권력. 이와 같은 것에 메이지 말라.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덤으로 주신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결실을 맺는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누는 삶을 살게 된다. 생명이 살지 못해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가 없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사람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으로 바꾸신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점점 불어난 것처럼 성령이 주시는 은혜도 점점 늘어난다.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큰 은혜를 이미 주셨다. 믿는 사람이 받는 성령과 은혜는 본인 한 사람만 적시고 마는 것이 아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적시고도 남는다. 내가 받은 것이 아무리 좋아도 만약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다. 이웃에게 전달되어 덕을 끼치지 않으면 아무리 신비해 보여도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은혜와 성령과 사랑은 받은 사람을 통해 흐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 되실 완벽한 자격이 있으시다. 그 분은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다. 우리의 인생 길에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음에서 살아날 길이 열렸다. 예수님이 죽음이라는 깊은 강물 속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인생의 깊은 강에서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에서 자기 발로 서겠다고 예수님을 부인하면 헤엄치는 신비한 능력이 사라지게 된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기를 내려놓는다. 성령은 자신은 감추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어 높이는 일을 하신다. 우리가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는 일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예수님을 어떻게 드러낼지, 어떻게 높일지를 늘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그것을 찾게될 것이다.

영원 속으로 들어가라

누가복음 9:27-36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설교 요약>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며 예수님을 따르라 하신 후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눅 9:27)고 하셨다. 헌신과 희생의 사람도 변화가 필요하기에 제자들을 위해 지상에서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천국을 보여주셨다.

필요한 변화의 영역
*표정- 예수님은 얼굴에 이미 거룩과 순결 그리고 기쁨이 충만했다. 그럼에도 다시 완벽한 표정으로 변화 되셨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29) 용모는 표정이고, 표정은 마음의 외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표정 및 내면의 변화가 계속 필요하다.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일이 필요하다. 이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만 가능하다.

*옷- 예수님의 또다른 변화는 옷이었다. 마가는 9장 3절에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옷은 우리가 입고 있는 문자적인 옷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자신의 아들 됨의 흰 옷을 입혀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평안하다. 거룩함을 추구하고 맑음을 사모한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고 있어도, 때로는 우리 영혼에 죄의 얼룩이 진다. 이 때 우리는 다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더러워진 영혼을 씻어내야 한다. '씻는다' 라는 동사는 영문 성경에서 '현재완료' 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계속해서 씻어왔음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옷을 씻는 것-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씻는것-은 중요하다.

*사명- 누가복음 30-31절을 보자.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 모세와 엘리야의 대화 주제는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변화산에서 세번 째 변화된 영역은 미래의 사명에 대한 마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잠을 못이루고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는 일들을 경험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비전은 대부분 우리가 자신 없어 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화산에서 앞으로 이루어야 할 사명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는 마음에 담대함과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의 빛에 의해 깨끗하게 될 때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이 가진 달란트를 존귀히 여기는 변화가 일어나며, 자신만에게 주신 생각, 마음, 표현, 독특함을 사랑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당신의 삶에 사명과 달란트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자신도 놀라는 일
누가복음 9장 33절에서 베드로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다. 베드로는 알 수 없는 하늘의 감동 속에 사로 잡혔던 것이다. 우리가 변화산으로 올라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우리가  해낼 수 없는 일을 이루신다. 약하고 부족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성취시키신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들은 예수님이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중에 일어났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의 체험을 잊을 수 없었고, 그로인해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가 사람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기도한 대로 그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고, 정오 12시에늘 기도하는 중에 로마 백부장 고넬료에 집으로 자신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고, 고넬료 가정은 베드로를 초대해 가족 모두 구원과 성령을 받았다. 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기도하지 않거나 주로 졸음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기록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변화산의 체험을 통해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기도 속에서 계속 변화되어갔다.
당신은 계속 변화되고 있는가? 정규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있는가?

따르면서 따르는가?

누가복음 9:18-26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설교 요약>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 27권 중에 13권을 썼다. 이런 그의 생애는 크게 세 기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번째 기간은 AD 6~33년으로 탄생과 교육의 시기이다. 바울은 유대인이자 다소의 시민으로 탄생 했다. AD 20~30년은 바리새인 이 되기 위해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을 공부했다. AD 30~33년에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었다. 두번째 기간은 AD 33~57년으로 다메섹에서 거듭나서 선교사로 살아간 시기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가던 중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이 후 광야에서 삼 년간 머물다 다메섹에 돌아와 예수님을 전하며 설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박해를 받게 되어 예루살렘으로 피신, 사도들을 만나 다소와 주변 지역에 말씀을 전하던 중에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 교회에 초대되어 함께 사역 하다 그 교회의 초대 선교사로 함께 파송된다. 

세 차례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후송, 투옥 중에 많은 서신들을 썼다. 세 번째 기간은 AD 57~64년으로 로마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시기이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있다가 로마로 후송되어 복음을 전하는 중에 네로 황제 때 목이 잘려 순교했다. 예수님의 생애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B.C 4 세기에 베들레헴 에서 탄생. A.D 25~27년, 제자를 선택하고 복음을 전하신 공생애의 삶을 사심. A.D 29~30년,십자가에 못박히신 후 부활 하시어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 평범한 30년, 공생애 3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3일, 예수님의 생애도 3 이라는 숫자로 순행하셨다. 오늘 말씀인 누가복음 9:23절도 3년 간의 공생애 중 하신 말씀이다.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라 하셨다. 이 말씀은 헬라어 '길'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나를 따르라'는 '함께 같은 길에 있다'의 의미다. 즉, 따르는 이들에게 방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잘 따르는지 늘 깨어있으라는 말씀이라 볼 수 있다. 그럼 예수님을 잘 따르며 그 분과 같은 길에 서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따르는 자들의 세 가지 증거
첫째, 자기 부인이다. 이 것은 세 영역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생각이다. 집착, 욕심, 고집, 탐욕, 조급함 등을 내려놓아 야 한다. 내려놓음 자체가 율법이 되거나 기쁨이 없다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과 음성을 들으면 기쁨으로 계속해서 내려놓고 싶고 기대가 생긴다. 다음 영역은 말이다. 말은 대화와 기도로 나눌 수 있다. 대화와 기도로 주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시인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말들이 입 밖 으로 나온다. 이 때 의지적으로 믿음의 말을 해야하며, 우리가 시인한대로 예수님이 이루어 주신다. 마지막은 의지다. 믿음의 생각과 말이 행동까지 가야한다. 만약 이 세 영역에서 변화되고 있다면 당신은 자기 부인의 삶, 예수님과 같은 길에 서 있다. 둘째, 예수님은 십자가를 날마다 지라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한 때 추억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매일, 매순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십자가를 지라 하신다. 셋째,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을 누릴 수 있게 십자가에 죽으셨다. 십자가는 누군가를 치료하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빼내다 격는 고난, 억울함, 박해 받음, 사명, 한 영혼을 위해 흘리는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피다. 당신의 십자가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십자가를 지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예수님의 상급
주님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으로 희생을 당하며 살게될 것이라 하셨다. 당장에 천국에 가는 것만이 구원이라면 우리는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목숨' 은 헬라어로 '푸쉬케'로 마음, 영혼이란 뜻도 있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희생하며 살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축복을 받는다. '잃어도 산다' 고 말씀하신다. 주님 때문에  찢기고 아프고 소생 불가능한 마음도 다시 살아난다. 어떤 것들이 살아날까? 영혼의 거룩, 하늘의 기쁨이 충만, 담대해짐, 더욱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 두려움 없는 평안, 주님의 음성을 쉽게 듣게 됨, 예수님처럼 살게 됨, 하나님이 모든 쓸 것을 채우심,

예수님 닮은 제자들이 열매로 일어남, 사랑과 긍휼의 면류관이 쓰여지는 10가지 축복이 임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상급을 사랑과 긍휼로 주는 곳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그 분을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기꺼히 죽고자 하는 자들에게 상급으로'사랑과 긍휼의 마음' 을 면류관을 주신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헌신을 하고 삶을 드리고 가진 것을 내려놓음을 상급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우리는 이 땅에서 소유가 적은 것을 복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며, 애통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식고 냉혹해 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여러분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주님을 따르자. 계속 따르자. 더 뜨겁게 따르자. 

벼랑 끝의 사랑과 영광

누가복음 9:7-17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설교 요약>
예수님께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의 생각은 예수님과 달랐다. 제자들은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자고 했다.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밖에 없음을 알고 불가능 할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타당한 이유들을 대며 현명한 제안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예수님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만 있다는 것을 아셨고 알아보게 하신것도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은 큰 무리가 부담스러워 빨리 돌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셨고, 이렇게 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여러가지를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결국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오병이어의 기적은 소유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내면의 긍휼과 사랑이 많고 적음의 문제 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제자들의 근본적인 요소는 소유의 문제였고 예수님은 가진 소유가 없어도 사랑으로 그들에게 배푸셨다. 

벼랑끝에 서게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이유
제자들은 예수님없이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위대한 일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영향력이 컸던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왕의 귀에 까지 이 위대한 일들이 전해졌다. 이런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현실의 문제에 봉착했다. 예수님이 만든 상황에 제자들은 현실적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불가능한 상황 앞에 서게 하셨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벼랑끝에 세우셨을까?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역보다 사랑이 더 커져 나가길 원하셨다. 제자들은 마을들을 다니며 헤롯왕까지 반응할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다. 유명해졌고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오병이어의 상황 앞에서 그들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이 적음을 알려주셨다. 사랑보다 사역이 더 커지면 하나님이 어떤 일의 결정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유의 크기로 하나님을 잘라낸다.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마친 제자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 마을로 떠나셨다. 그러나 무리가 예수님이심을 알고 따라갔고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시며 병 고침이 필요한 사람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은 조용한 시간을 깨뜨린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영접'해 주셨다. 예수님을 사람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였고 정도 많으셨다. 예수님은 무리를 돌려 보냈으면 하는 부담감을 가진 제자들의 영혼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고 도전하심으로 그들 자신 안에 있는 무정함과 더 확장 되어야 할 사랑의 필요를 보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사랑이 더 확장되고 커지는 순간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되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따윈 관심이 없다. 죄성 때문이다. 자신의 만족과 영광을 추구하며 산다. 오늘날의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생각속에는 부족함이 없고 풍성하고 모든것이 다 채워져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 반대의 상황은 예수님이 없거나 반쪽 밖에 없다. 하지만 말씀은 예수님이 계심에도 벼랑끝에 서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삶의 배가 가라앉으려 해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예수님이 더이상 너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속상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함께 하기 때문에 벼랑끝에 서게 되었다'고 속삭이신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육지로 들어갈수 있었다. 그러나 홍해 앞에 막다른 벼랑끝에 서게 하신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계신대도 사람 숫자에 비해 가진 것인 비교도 되지 않게 작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었다. 홍해속에 수장된 바로의 군대를 보면서 무사히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벳새다 광야에서 날이 저물고 5천명이 먹고 잘 곳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병이어를 통해 5천명 이상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경험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고통과 깊은 절망의 삶을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누군가를 풀어주고 치유하고 자유케 하실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누군가를 풀어주고 치유하고 자유케 할것이야'라고 기대하라. 이것이 사랑이자 영광이다.